귀촌 생활 적응 일기
현역 시절의 식사가 생활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생존을 위한 것이 되었다. 평소 즐기지 않던 음식도 영양 부족이나 불균형을 막고자 의무 방어전을 치르듯 목구멍으로 넘긴다. 계란 10개를 한꺼번에 삶아 하루 한 두 개를 꾸준히 먹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혼자 귀촌하여 삼시 세끼를 대부분 내가 직접 조리하여 해결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장바구니 물가는 이제 손바닥 안의 손금이다. 무 배추 대파 양파 등은 수확기에 농사를 짓는 친구에게 거저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트에선 작은 단위의 포장 분량도 3,000원 내지 4.000원의 대가를 치러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참기름, 들기름을 가끔 선물로 받은 경우 다시 다른 지인에게 이를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품목을 구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의 지출이 따라야 한다. 영업을 위해 치약 비누세트, 주방세제, 기타 일용품 등을 내 애마 크렁크에 언제나 가득 대령했다. 우리 회사와 거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이런 물품을 판촉물이라는 이름을 달아 누구에게나 쉽게 건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집안 혼밥을 이어가기 위해 이런 식용유를 장만하려면 반드시 대가가 따랐다.
주식인 잡곡밥이나 부식인 반찬의 조리와 요리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이 매우 아까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어느덧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나중엔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이 일쑤였다. 이러니 원가 계산상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자주 즐기는 메뉴도 두세 번으로 나누어 식탁에 올리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해치우곤 했다. 이 또한 낭비 요인이었다. 원가 계산상 유리할 이유가 없었다. 캔맥주도 당장 마실 분량만 정확히 손에 넣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마트의 방문 횟수를 줄인다는 핑계로 늘 추가로 바구니에 담았다. 결국 냉장고에 보관하는 기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에 필요 이상의 분량을 소진했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치우지 않고 아끼느라 냉장고에 고이 모시더라도 이는 분명 ‘비용’ 임에 틀림이 없었다.
‘집 안의 혼밥’과 ‘집 밖의 혼밥’의 원가계산을 정확히 해내는 역량이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물론 회계학의 실력이 미천한 탓도 있다. 하지만 식사 방식을 개선하거나 충동구매를 자제하는 등 다른 부문의 노력을 병행해야 양자의 유불리를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했다. 1인 가족이라도 한 단위의 살림살이이다. 혼자 귀촌하여 지낸다는 것이 원가계산을 해보자면, 생활비 중 식비가 결코 절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내가 내린 중간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