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혼밥 vs 집 밖 혼밥(5편)
귀촌 생활 적응일기
왼쪽 출입문 나무 판자벽엔 ‘합동연탄’ 연락처가 적힌 쪽지가 그 역사를 뽐내기도 했다. 홀 오른쪽 한 구석엔 오리지널 조선간장이 8부 정도 채워진 몇 개의 용기가 이동식 책장 모양의 장식장 위쪽 칸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자리 잡은 맞은편 테이블 바로 뒷편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간격만 확보한 채 격자무늬 미닫이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아래 부분엔 횡으로 길쭉하게 간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그 좌측 상단 끝엔 손님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투명한 유리를 덧대었다.
홀 내엔 4인용 테이블 5개가 전부였다. 푸른빛이 도는 체크무늬 비닐 식탁보가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식탁 직사각형 상판의 긴 변 쪽을 압정 4개로 식탁보를 야무지게 고정시켰다. 의자마다 아래 부분에 대각선으로 때려 박은 가새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들려주는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줄이고 의자 몸체가 주저앉는 것을 막으려는 용도였다.
빛이 바랜 영업신고증은 액자에 담긴 채 좌측 벽의 제 자리를 여전히 잘 지키고 있었다. 1982. 2. 1 이란 신고일에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이곳에 가게 문을 연지 무려 40여 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훌쩍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역사와 관록의 증거였다.
왼쪽 벽의 중간 구역엔 길쭉한 버섯 실물을 붙이고 그 위엔 여러 마리의 매미를 랜덤으로 배치했다. 오래전 홍수 때 불빛을 찾아 이곳 식당으로 돌진한 이 곤충들을 박제처럼 잘 보존하고 있었다. 신용카드 결제기는 내 역량으론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리를 잡자 안주인은 ‘안녕하세요?’란 간단한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보통의 냉수나 생수가 아니었다. 안주인은 결명자차가 가득 담긴 물통을 내게 내밀었다. 이내 물통을 회수하려던 안주인에게 부탁하여 차를 한 잔 더 얻을 수 있었다.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규모가 큰 음식점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콘텐츠 하나로 승부하는 곳이었다.
대망의 오늘의 메인 메뉴인 달인 짬뽕이 식탁에 오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이곳을 들어선 뒤였다. 주문을 받자마자 그 옛날 전통방식으로 수타면 제조 공정의 시작을 알리는 정겨운 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기계를 돌려 면발을 뽑아내는 공정과는 아주 달랐다. 300번지 시대 어머니가 홍두깨 칼국수를 만들 때 툇마루에 올렸던 기다랗고 두꺼운 직사각형의 도마가 떠올랐다. “탁 탁 타다닥” 길게 늘어진 밀가루 반죽을 양손에 들어 밀가루를 묻혀 가며 ‘면판’ 바닥을 내려치는 바로 그 소리였다.
해물이니 차돌이니 이런 수식어가 앞쪽에 붙지 않았다. 그저 짬뽕 7.000원이었다. 우선 착한 가격이 맘에 들었다. 심플한 스테인리스 국 대접에 명품 짬뽕의 콘텐츠를 모두 담아냈다.
비계가 전혀 없는 돼지 살코기를 길지만 약간 도톰하게 썰어 넣었다. 버섯 당근 양파 양배추도 돼지고기 크기만큼 올망졸망한 모습으로 같이 등장했다. 붉은색 고춧가루도 눈에 띄었다. 면발의 굵기가 내 취향에 아주 딱 맞았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음식 간도 그런대로 무난했다. 튀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더욱 정이 갔다. 내가 주문을 할 때 ‘좀 싱겁게’를 외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음식 양도 자로 잰 듯했다. 단무지 양파 춘장을 소박하게 기본 반찬으로 내었다. 주인장의 내공이 읽히는 명품요리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읍내, 길 옆에 중국집은 세월을 멈춘 듯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73세의 주인장은 고집스레 이 맛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식객 허영만이 이곳을 제대로 찾아낸 듯했다. 소박한 동네 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딱 맞는 곳이었다.
나는 오늘 집 밖의 혼밥 먹기에 성공했다. 몇 번의 문전박대 끝에 겨우 찾아낸 맛집에 들러 짬뽕 한 대접을 뚝딱 해치웠다. 조금 전까지 나를 손님으로 맞기를 거부한 몇 곳의 음식점에서 내가 느낀 불쾌함, 배신감, 소외감을 일거에 떨쳐냈다.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