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안 혼밥 vs 집 밖 혼밥(4편)
귀촌 생활 적응 일기
나는 오늘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 점심식사를 집 밖의 혼밥으로 해결하기 위해 보금자리를 나섰다. 관내 식당에선 혼밥을 되도록 삼가고 있다. 나의 동향에 관한 온갖 가짜 뉴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귀촌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며 이곳에서 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등으로 나를 두고 주위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이 싫었다.
’덜기기‘를 경유하는 차로가 차단되니 어쩔 수
없이 학산면 쪽의 우회로를 택했다. 며칠 전이었다. 나는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쑥을
비단강 건너 절친 전원주택 인근 밭에서 조
달했다. 12인분 정도의 쑥국을 조리에 성공
했다.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 식사는 이 쑥국
덕분에 무난히 넘겼다. 처음 내 목표는 이 부
식을 연속해서 10회 정도 고정 메뉴로 가져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희망 사
항에 불과했다. 오늘 점심에도 이 쑥 국에 잡
곡밥을 뚝뚝 말아 목구멍으로 넘기고자 작정
한 순간 금세 식욕이 달아났다. 그래서 읍내
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이미 읍내엔 몇 개의 단골 음식점을 확보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14 내지 16킬로터를 주행하곤 했다. 집안 혼합을 이어간 탓에 떨어진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를 요긴하게 활용하
기 위함이었다. 단골집을 랜덤으로 찾았다.
읍내를 오가는 주행 길은 지친 내 영혼을 달래
는데 일조를 했다. 풍광이 뛰어난 산수를 야무
지게 즐기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기자기한 산
세로둘러싸인 준고속화도로를 달리며 맑은
공기도 마음껏 들여 마셨다. 제한속도가 80킬
로미터이고 통량량도 그리 많지 않아 교통정
체에 따른 부담이 전혀 없었다. 드라이브코스
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웃 동네 학산면 농협 하나로
마트 앞 주차장에 나의 애마를 세웠다. 오늘 시장바구니에 내가 가장 먼저 채우고 싶은 것
은 단연 365CC 6캔 맥주 세트였다. 그런데 또 충동구매의 수렁에 빠졌다. 어묵, 마른안주, 두, 말린 바나나 등 견과류, 마늘 장아찌에 나도 모
르게 손길이 갔다.
‘이렇게 마트에 들를 때마다 처음 예정에 없던 품목을 덩달아 자주 추가하면 아니 되는데...’ 그런데 매번 이 각오가 쉽게 무너졌다. 순간 이번에도 원가계산이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곳은 우리 관내 하나로마트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컸다. 취급 품목이 많으니 선택의 폭도 넓었다. 앞으로 굳이 읍내까지 16킬로미터를 주행할 필요가 없을듯했다. 관내 인구가 1,400명에 겨우 턱걸이한데 반해 이곳은 2,250명을 넘어섰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살아야 모든 인프라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는 평소 내 생각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작년 여름에 귀촌한 이래 연고가 있는 이곳 주유소를 자주 찾았다. 이곳 주인장을 통해 인근 삭당을 골고루 소개받은 적이 있다. 내가 추천을 받은 곳은 물론 관내에서 학산 사거리 진입로 입
구부터 ‘야지리’ 식당을 찾아 오퍼를 냈으나 가는 곳마다 ok 사인을 받아내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
다. 모처럼 집 밖에서 별식으로 혼밥을 해결하기
가 이리도 어려운가. 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더 이상 밥집을 찾는 일을 포기할까도 했다. 내 보금
자리로 돌아와 집안의 혼합을 한번 더 이어갈가 생각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들르기
로 했다.
‘선미 식당’이란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70대 초중반 어르신과 문밖에서 잠깐 조우했다. 식사를 할 수 있느냐
고 정중히 물었다. 혼자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주인장은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이곳은 소박하다는 말보다는 허름하다는 말이 더욱 잘 어울렸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후 식당 안을
쭈우욱 두루 살폈다.
모 지상파 메이저 방송국 프로그램 중 ‘생활의 달인’으로 선정된 짬뽕 맛집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모 공중파 방송 ‘백반 기행’의 주인공 허영만 식객도 다녀간 곳이었다. 왼쪽 구석 한편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납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300번지 시대 우리 부엌에 새워둔 찬장에 다름이 없었다. 반찬 대신 물컵과 개인용 접시가 그 안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철가방 2개를 머리에 덩그러니 이고 있었다. 배달 주문이 물밀 듯이 폭주하던 화려한 전성기를 말해 주었다. 이 찬장 왼쪽 한 귀퉁이엔 ‘김장독’이란 정겹고 관록 있는 브랜드를 부착한 김치냉장고 한 대가 버티고 있었다. 딤채라는 상표보다 훨씬 선배로 보였다. 세상에 나온 지 긴 세월을 웅변하는 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