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된장국

결정론과 가능론

by 그루터기

오늘은 수박밭 일을 하는 동네 일꾼들 틈에 꼽사리 끼어 점심 한 끼를 신세 지기로 했다.

“저기, 된장국 남은 것은 혼자 사는 양반이 가져가세요. 여기 공깃밥도 하나 남았네요.”

공깃밥은 내 보금자리 냉장고 냉동칸에 차곡차곡 줄을 맞추어 충분히 쌓여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된장국 잔여분을 챙겼다. 친구 부인은 혼자 귀촌한 나를 불쌍히 여기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 부인의 이 호의를 더 받들기로 했다. 백금색 알루미늄 들통째로 트렁크에 실었다. 이 된장국으로 열 끼 정도 요리나 조리 걱정에서 벗어나 집 안 혼밥을 충분히 이어갈 속셈이었다.


이제 완연한 봄날로 접어들었다. 기온이 점차 오르는 시즌이 온 것이었다. 냉장고의 신세를 지지 않고 상온에 둔 채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이 된장국을 매번 나누어서 식탁에 올릴 때마다 한 번씩 충분히 끓여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 간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매번 일정한 양의 생수를 보충해주었다. 이 된장국에 10여 회나 부식이란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 내 처음 생각이었다. 이 최초 목표는 너끈히 초과 달성이 가능할 듯했다. 아니, 된장국은 이를 넘어 이미 ‘화수분’이 되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수도권 나들이 기회가 있었다. 나는 2박 3일간 자리를 비웠다. 이 공백은 음식이 부패하는 데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200% 달성이란 나의 수정된 계획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내가 혼자 귀촌하기 전의 도회지에서 보낸 현역 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흔치 않게 일어났다. 남은 된장국에 내 눈길이 갈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친구 부인이 나를 먼저 챙길 이유도 당연히 없었다.


형법학에는 아주 큰 담론이 있다. 자유의사론과 의사결정론이 그것이다. 전자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의지를 가지고 모든 행동에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라 보는 데 반해 후자는 사람은 그런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환경가능론과 환경결정론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환경가능론’보다 ‘환경결정론’이 더 설득력 있게 와닿는 귀촌 생활의 한 단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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