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안경점(1편)

유난히 집착하는 아이템

by 그루터기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란 하여가에 나는 평소 동의하지 않았다. 대단하게 커다란 담론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수시로 바꾸는 캐릭터는 결코 못 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유난스럽게 집착하는 아이템에는 3가지가 있다. 안경, 술, 책이 그것이었다. 이 세 가지에 관해서 나의 집착은 독특하고 집요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공포스러울 정도라 해도 나는 이에 이의를 달지 않겠다.


“예, 아무래도 안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시력이 아주 모자란 것은 아니지만 만약 안경을 쓰지 않으면 좀 피로를 자주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학 3학년 시절이었다. 영등포역 대각선 맞은편 건너에 자리했다. 고향 절친 형이 꾸려가는 이곳 안경점에 들렀다.


평소 기다란 복도 길에 들어서면 늘 그랬다. 건물 좌우편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빛과 공중에 날리는 먼지 탓으로 생각했다. 시계가 약간 불분명하고 사물도 불규칙하게 보였다. 강의실 칠판 위의 글씨를 읽어내는데 원근조절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래서 나는 20대 초반에 안경족에 합류했다. 한 때 나는 이미 안경 신세를 지며 세상을 살아가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무엇인가 많이 알고 있고 좀 고급지게 말하면 ‘이지적인 캐릭터’가 덤으로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안경이 내 얼굴의 일부가 된 지 겨우 1년 만에 무려 5개의 안경을 갈아치웠다. 안경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식사 후 방바닥을 딛고 일어나서는 순간 안경이 망가진 것을 자주 발견했다. 방바닥에 내팽겨진 안경을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깔고 앉은 덕분이었다. 때론 손바닥으로 안경을 짚고 일어나면서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내 시력이 그리 나쁘지 않다 보니 안경이 내 몸과 일체화되기엔 아직 일렀다. 아예 시력이 많이 모자랐다면 안경을 벗고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을 듯했다. 그랬다면 이런 불상사는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오늘 오후엔 나는 선택받은 학생들이 기거하는 ‘장학 기숙사’인 ‘삼의원’ 휴게실에 들렀다. 선배와 모처럼 불꽃 튀는 탁구 시합을 마쳤다. 안경은 주인이 아직 마음에 그리 썩 들지 않았는지 나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 기숙사 멤버인 후배를 통하여 나중엔 안경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안경 유지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아예 급속도로 시력이 떨어져 내가 안경과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내 눈의 생물학적 연령은 급작스레 높아지지는 않았다.


만 45세를 넘어섰다. 안약이나 각종 연고제를 담고 있는 포장지에 적힌 용법 용량의 글씨 해독이 어려워졌다. 직업 때문에 PC 자판이나 주식시장 시세판에 자주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을 혹사시키는 생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생활필수품을 수리 수선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럴 경우 친구, 친지, 친인척이 아닌 다른 곳을 선뜻 찾아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렇게 무연고지를 찾을 경우 내가 혹시 바가지를 쓰지 않을가를 걱정하는 부문에 몇 가지가 있었다. 이에는 치과병원이나 자동차 수리센터에 더하여 안경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안경족 생활에 많이 익숙해질 짬밥을 넘어섰다.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새로이 터를 잡은 곳에서 다시 어느 곳을 찾아야 할지가 작은 고민거리였다. 그러던 중 나는 한 곳 안경점에 필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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