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여러 가지 제약과 걸림돌이 많은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기성이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떠 올렸다, 그야말로 승부수를 던졌다.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학점을 받을 수 있는 묘수를 짜낸 것이었다. 자신이 수강 신청한 과목 담당 교수를 일일이 찾아 나섰다.
“잃어버린 세월 중 반이라도 만회하려 합니다. 교수님 저 좀 도와주세요. 기말시험을 리포트로 대체하게 해 주세요.”
우리 동기들은 물론 선후배를 통틀어도 전무후무했다. 이러한 전례가 없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기성이는 교수를 찾아다니며 설득과 애원을 병행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던가. 이래서 기성이는 의무 출석 일수만을 채운 후 기말고사를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특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보통 11월 말이 2학기 종강일이었다. 그러나 기성이는 이러한 눈물겨운 노력 끝에 1개월 여를 앞당겨 2학기를 수료 후 군 입대에 성공했다.
우리 동기들은 2학년 교련을 수료하면 육군 기준 본래의 군 복무 연한인 30개월에서 3개월 보름이란 세월의 군 복무 단축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기성이도 26개월 반의 복무 기한을 채워야 했다. 10월 하순에 입대를 한 기성이는 3년 차 3월 10일 전후에 전역이 가능했다. 이래서 결국은 3년 차에 캠퍼스로 복귀할 수 있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군 입대일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구청과 병무청의 문턱이 닳도록 수 없이 넘어 다녔다는 것이 나중에서야 밝혀졌다. 이래서 기성이는 2년 6개월 보름이란 세월을 당당히 현역 복무로 채우고 학사 일정에 차질이 없이 모교에 복학을 하는 자그마한 기적을 이뤄냈다. 2년 후배 재학생 들과 나머지 캠퍼스 생활을 이어갔다.
기성이는 전공인 법학 과목 이외의 다른 단과 대학 강의를 열심히 섭렵했다.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과목이었다. 음대 ‘화성악’과 상대 ‘소비자 행동 분석학’ 강의를 찾아 캠퍼스 내를 활기차게 누볐다. 우리 동기들은 이런 기성이를 두고 사실 좀 빈정거리거나 수군대기 일쑤였다. 법대 전공과목 수강만을 고집하던 우리 동기들에 견줄 때 기성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랐고 매우 다양했다.
“기성이와 매일 붙어 다니는 저 여학생은 도대체 누구야? 애인이야? 아니, 고향 후배라고 하던데?”
기성이는 강의가 빈 시간엔 늘 혼자가 아니었다. 기성이와 늘 동행하는 여학생의 옷차림은 독특했다. 북한 성인 여성의 전통 복장에 딱 맞았다.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였다. 이런 패션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캠퍼스 안의 구석구석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이 커플은 나타났다. 왕관 모양을 형성화한 ‘크라운 콘서트 홀’ 뒷 건물은 학생회관이었다. 이곳 구내식당을 서너 명의 동기가 찾아 나섰다. 오늘도 이 커플을 이곳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 후배로 추정되는 여학생과 기성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지금도 이에 대한 정확한 소식을 전해 들은 동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성이는 보통의 다른 입학 동기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남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을 길을 찾아 나서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던 깨어 있는 친구였다.
주위 보통 사람들의 제도나 관행에 갇힌 루틴한 사고와 생활방식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인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일찍이 기성이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더라면 나도 1년의 세월을 절약하여 내 인생의 역정이 조금이나마 달라졌으리라는 흐뭇한 상상도 해보았다.
“박현성, 모 제조업체에서 정치자금을 기부했어. 이 행위는 과연 법인의 사업 목적 범위 내의 행위로 볼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지?”
‘무어. 그것이야 판사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
“교수님, 판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네요.”
회사법 강의 시간이었다. 잠시 딴전을 피고 있던 나에게 교수는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내가 무심결에 내뱉은 혼잣말을 기성이는 교수에게 그대로 일러바쳤다. 순간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이미 내 이름 석자를 제대로 기억을 하는 교수의 관심 있는 지목과 질문에 나는 너무 성의 없이 응대를 했다. 그런데 기성이의 전언이 더욱 문제였다. 기성이는 자신이 독특한 캐릭터임을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아직도 행방이 파악되지 않는 기성이의 무운장구와 행복한 삶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