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일선 창구가 시끄러워졌다. 정확히 1995년 8월 1일이었다. 타행입금 업무 처리가 잘 못되어 이중으로 입금이 되었다. 그래서 금융기관에서 아주 중요한 사항인 현금 시재가 삼천 오백만 원이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영업점 출입문을 올린 지 조금 지나 참으로 만만치 않은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최대리는 강 부장과 주로 발로 뛰는 외부 법인영업을 맡고 있었다. 이번 건은 지점 내 업무분장상 '영업총괄' 쪽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분쟁의 성격상 기동력이 필요했고 거래은행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법인팀에서 문제 해결을 자처하고 나섰다. 금융기관이라 하지만 우리 화사는 은행과는 좀 달랐다. 우선 자기 앞수표 발행권한이 없었고 은행권과 공유하는 전산망도 초보단계에 불과했다.
S대 외교학과 Y 교수는 오늘 이른 시각에 삼천오백만 원을 자신의 계좌에서 아들 명의인 농협 계좌로 송금을 해달라고 했다. 바로 어제까지도 우리 회사의 점포 간의 송금만이 가능했다. 드디어 오늘부터 업무영역이 조금 더 확장된 것이었다. 제한된 범위지만 다른 금융기관 계좌로도 송금이 가능해진 첫날이었다. 그런데 오늘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타행 이체업무'는 그 원인이 고객이나 직원에게 있든 취소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Y 교수에게 삼천오백만 원의 출금전표와 무통장입금의뢰서를 접수받은 김 계장은 정상적으로 단말기를 조작하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정상 처리 완료'라는 팝업창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김 계장은 무통장입금 처리가 무산된 걸로 알고 자신이 보유 중이던 삼천오백만 원의 수표 현물을 고객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어 우리 지점과 가까이에 자리한 주거래은행인 D 은행 점포로 자리를 옮겨 해당 업무처리를 할 것을 안내했다.
영업이 종료되어 지점의 철제 출입문을 내리고 창구 직원들은 업무 마감에 들어갔다. 각각의 거래 유형별로 당일 중 일어난 거래가 모두 나타나는 '일일집계표'를 출력한 김 계장은 기겁을 했다. 오전 중에 입금처리가 무산된 것으로 알았던 Y 교수의 거래가 놀랍게도 정상적으로 처리된 거래로 밝혀진 것이었다. 당사의 거래, 인근 은행의 거래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두 번이나 중복 입금처리가 되었다.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 터졌다.
이것 참으로 난감했다. 법인팀은 지점 업무용 차량을 즉각 출동 대기시키고 Y 교수의 주소, 전화번호, 인적 사항 등을 손에 쥐고 달음박질 선수처럼 Y 교수의 자택으로 내달렸다. 우리는 상기된 얼굴과 긴장된 표정에다 식은땀에 찌든 상태로 아파트 출입문을 들어섰다. Y 교수는 자신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굳게 다문 입술 위에다 세로로 가져다 밀착시키며 우리 일행에게 조용히 해줄 것을 제일 먼저 요구했다.
“당신네들, 금융기관 직원이라고 했지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아주 철저하시군요? 당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한숨에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어서들 돌아가세요. 우리 손자가 잠에서 깨면 곤란하니 조용히 하세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 집에 처음 우리가 들어설 때부터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하고선 본인은 자신은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안방에서 새근거리며 다디단 낮잠을 이어가던 손자는 드디어 잠에서 깨어나 잠투정이 섞인 울음을 울어 대기 시작했다.
국립 S대 교수라면 이른바 지도층에 속한다고 보아도 절대 무리가 아니었다. 사건의 내용도 별로 복잡하지도 않았고 금융기관에서 고객에게 손해를 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줄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었다. 아마도 금융기관의 매끄럽지 못한 업무처리에 관해 일단 기분이 상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본인의 가치관이나 정체성 등에 맞지 않은 행동은 일절 실행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아집의 결과로 보였다. 일단 Y 교수 설득에 실패한 우리 일행은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머물면서 제발 우리의 부탁을 들어 달라고 애걸해도 결론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은 눈물을 머금고 우리는 회군했다. 이런 경우엔 우리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평소 우리 지점과 좋은 유대관계에 있는 D 은행 점포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마지막 방법이었다. “본 건과 관련하여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툼 건에 관하여 당점이 모든 책임을 진다.”라는 확약서를 건네고 고객의 입금의뢰 거래를 취소하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자신이 가진 문장 실력 이상을 쥐어 짜내어 적절한 문구를 만들어내다 보니 최 대리는 아직도 그 사본을 파일철에 끼워 서재에 고이 보관 중이다.
이즈음 학창 시절 교수로부터 들은 일화가 떠올랐다. 예전에 주민등록지를 옮기려면 나가고 들어오는 곳에 각각 전출입 신고가 필요했다. 전출 후 일정한 기한 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이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어느 대학 모 교수가 그 규정을 알지 못하였으니 과태료를 낼 수 없다고 버티었다. 이에 동사무소의 담당 직원은 과태료를 마지못해 면제해 주는 대신 그 사유란에 “무식의 소치”라고 적어 넣고 더 이상의 다툼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 Y 교수도 우리 거래은행에 자신의 무통장입금증을 반납하지 않는 사유로 혹시 이 “무식의 소치”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최 대리는 지금도 믿고 싶다.
국립 S대의 교수라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선 내로라하는 전문가이다. 본 건의 경우 보통 사람의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서 판단했어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우리 금융기관 직원의 업무 시스템의 오류에 관한 사과를 받고 그저 필요한 협조를 해 주었으면 일이란 게 물 흐르듯이 마감되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Y 교수는 자신의 전문가로서의 자존감이나 잣대를 일반 보통의 영역에 들이댔던 것이었다.
외교학이란 분야에서 자신이 전문가이듯이 금융 분야에선 우리가 전문가란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자신의 소신이나 고집을 관철하여 본인은 조금이나마 일종의 희열을 느꼈겠지만, 상대편을 생각하는 아량이 부족했다. 작금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