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곧 죽는다고 하네요

by 그루터기


“엄마, 나 곧 죽는데요. 전립선암 4 기라네요.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고 뼈까지 이미 전이가 되었다는데.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나, 어떡하지요?”


이제 겨우 40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조카의 절규였다. 큰 누나의 작은 아들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들과 딸 두 자녀를 둔 조카는 휴대폰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중국 현지 공장이 자신의 일터였다. 한순간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국경을 넘으려면 2주간의 자가격리는 기본이었다. 최선을 다하여해 볼 수 있는 방법 은총 동원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5대 종합병원 중에 한 곳의 명의를 수소문하여 서둘러 진료 예약을 마쳤다.


병의 진도가 벌써 4기까지 나갔으니 한시가 급했다. 그럼에도 2주간의 자가격리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비행기 편 예약도 늦어졌다. 예약 후에도 또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는 몇 차례 지연되었다. 집안 모든 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본인이야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외삼촌인 나도 약 10여 년 전에 전립선암 소동을 겪은 적이 있었다. 제발 나처럼 소동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당시 터득한 관련 지식을 동원하여 나는 조카를 설득했다. 일단 마음의 평정만을 찾도록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무려 1개월이란 긴 세월을 보낸 후 겨우 대학병원 교수를 대면하는 데 성공했다. 교수는 의외로 차분하고 침착했다. 전립선암 4기라면 당장 조직검사부터 하는 것이 우선 순서로 보였다. 그런데 교수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절대로 서두르질 않았다. 그러던 중 교수는 전립선암이 아닐 수 있다는 아주 희망적인 진단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최근 혈액 검사에서 특이항원 수치가 눈에 띌 정도로 뚝 떨어졌다. 자신은 방광염을 머릿속에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삼촌, 차라리 방광염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교수 말을 믿어보자. 삼촌도 너와 같은 생각인데 그래도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으니 천만다행이다.”

차라리 중국 현지 의사의 진단이 오진이었으면 하는 것이 어느새 우리 집안 모든 이의 바람이 되었다.


교수는 참으로 인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일단 환자를 안심시키고 말도 신중하게 이어갔다. 의학지식이나 기술이야 명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 간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여러 번에 걸친 혈액 검사와 CT촬영, 최종 단계인 조직 검사까지 마쳤다. 검사기간 동안 항생제 등을 투입하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드디어 전립선암이 아니라는 최종 진단이 나왔다. 참으로 하늘이 도운 것이었다. 조카는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되돌아왔다.


교수는 진료 초기부터 전립선암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나중에 일러주었다. 뼈까지 전이된 전립선암 4기이면 아예 걷지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약 10여 년 전 나는 복합점포의 지점장이었다. 회사의 배려로 중국 여행을 갈 기회가 주어졌다. 자신을 교포 2세라고 소개하는 남자 가이드가 공항까지 우리 회사 직원 일행을 마중 나왔다.


“여러분, 중국을 영어로 무엇이라고 부르지요? “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우리 일행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처다 볼뿐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정답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가이드가 묻는 의도가 더 궁금했다.


“차이나라는 것을 다 알고 계시지요? 여기는 제 고국이기도 한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우리나라와 차이 나는 곳입니다.”


기대 수준을 낮추라는 사전 당부였다. 나의 3박 4일간의 중국 여행은 일정 내내 이 가이드의 처음 일갈을 확인하는 여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GDP 규모 등 어느 기준을 들이대어도 이미 세계 10위권 내외의 국가가 되었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중후 장대 한 산업은 물론 반도체 기타 서비스업 분야에서도 다른 선진국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여행 기간 동안 기념품으로 살 만한 물건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제조업 강국이고 중국 현지에는 우리나라 제품과는 모두 차이나는 상품들 뿐이었다.


비단 제조업 분야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이나 의료기술은 이미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이 분야에서는 훨씬 차이가 났다. 중국 의료 기술이 우리나라 대비 현격한 차이가 난 것이 오히려 조카에겐 호재였다. 작지 않은 아이러니였다. 중국 의술이 우리의 그것과 만약에 별 차이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가를 나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눈부시게 발전한 의료 기술의 혜택 때문에 나는 오늘도 중국에 있는 조카와 즐겁게 카톡을 주고받는다. 그 무시무시한 전립선암 4기란 최종 진단을 내린 중국 의사에게 조카 대신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집안 모든 이가 바라던 대로 중국 의사의 오진으로 마감됨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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