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과연 기호품에 불과한가

흡연

by 그루터기

“현태야, 잡채밥 먹고 싶지 않아? 우리 집에 가자.”

“웬 잡채밥은?”

“잘 알면서 그래. 석사 학위 영문초록을 써야 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대학 동기 용식이는 이제 어느덧 논문 제출 학기이다. 나는 좀 딴전을 피느라 한 학기 뒤로 밀렸다. 동기 용식이는 이제 논문 작성은 모두 마무리하고 영문초록 완성만 남겨두었다. 나는 국가고시 시험과목으로 외국어를 영어로 택하다 보니 영어공부에 그간 제법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저 시험대비용 공부이다 보니 말하기는 물론 작문실력도 결코 자랑할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의 도움을 찾는 친구가 있으니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최근 장안동에 빌라를 마련한 용식이네에 금세 도착했다.

“현태야, 너 바보 아니야? ”

“이상하네, 티브이에서 본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아니었어?”

나는 친구네 주방 한 곳에 자리한 눈에 익지 않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당기기 위해 성냥을 들이댔다. 가정집이 아닌 음식점 등에서 이 물건을 몇 번 보기는 한 것 같았다. 그때 분명히 성냥을 그어 기다란 금속 막대기 끝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20대 중반을 코앞에 두었음에도 최근에 무작정 상경한 시골 출신 떠꺼머리총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스레인지의 중간 밸브를 열고 스위치를 돌리면 불이 붙는 것이 신기했으니 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우리 둘은 방금 중국집에서 배달된 잡채밥 곱빼기가 담긴 기다란 접시를 순식간에 비웠다. 우리는 영영한 사전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보조자료 등을 총동원했다.

“~~ 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라는 관용구를 초록 도입부에 제일 먼저 배치했다. “It goes with saying that~~ ”이 그것이었다. 비록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그럴듯한 관용구로 기선을 제압하다 보니 초록의 반 이상은 이미 완성이 되었다. 우리 둘은 오늘의 미션인 논문 초록을 마무리하는데 채 두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잡채밥 값은 충분히 해냈다고 감히 자부했다. 뿌듯한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어느새 1년여라는 세월이 또 휘리릭 지나갔다.

“현태야, 별일 없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할 자료에 대한 영문 초록이 또 필요한데. 어떡하지?

전보다 훨씬 양도 많고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시험공부를 하는 자네한테 시간을 내달라고 또 부탁하기도 그렇고 ”

이번에는 잡채밥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요약해야 할 양이 많은 데다 국가고시 1차 시험이 코앞이었다. 나는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친구들을 스크린 했다. 갑자기 그럴듯한 이 아디어가 떠올랐다. 마포구 소재 S대 대학원 영문과에 재학 중인 고교 절친 상구에게 부탁해보기로 했다. 그간 자주 연락을 하던 사이가 아님에도 친구는 도움을 주겠다고 흔쾌히 나섰다. 그래서 나는 용식이와 둘이서 S대 캠퍼스를 찾았다. 기다란 나무벤치에 앉아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상구에게 내밀었다.

“나 혼자서는 어렵고 몇 명이서 나누어 작업을 해야 되거든,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다시 모아서 다듬고 마무리해할 것 같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바쁠 텐데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 하이, 우리가 무엇을 해주면 될까? 잡채밥 사줄까?

“야 임마 잡채밥은 너나 좋아하지?”

“정 그러면 미팅이나 한번 주선해라.”

이렇게 해서 우리 사이의 작은 거래는 쉽사리 성사되었다.


상구는 빠른 시일 내에 미팅을 하고 싶었나 보다. 예정보다 훨씬 일찍 우리가 부탁한 미션을 완수했다. 드디어 대망의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주전자 멤버, 꼽사리로 끼어들었다.

“야 그래 저번 내 친구 용식이가 주선한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은 맘에 들었어? 에프터는? 다시 만나기로 했어?”

“말도 말아라, 그 친구 호되게 칠 책을 한번 해야 될 것 같아”

사연은 이러했다. 친구가 만난 여학생은 자신의 면전에서 담배를 어렵지 않게 꺼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괜찮습니다. 담배를 피셔도 됩니다”

상구는 이른바 ‘비진의 표시’를 저질렀다. 본래의 속마음과 다른 말을 했다. 여학생의 외모나 다른 것은 그다음이었다.


사정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마주한 여학생도 역시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당당히 입에 물었다. 나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속으로 ‘릴랙스’를 계속 외쳤다. 같이 있는 시간 내내 표정관리를 하느라 편치 않았다. 친구 상구와 마찬가지로 이 여학생과 다음 모임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럴듯하게 핑계를 댔다. 대학원 세미나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학생의 연락처를 받기는 했으나 나중까지 통화에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


담배는 기호식품에 불과하다. 흡연을 하고 하지 않고는 사람마다의 각자 고유 취향인 것도 역시 사실이다. 당시 상구는 담배를 피웠지만 나는 아예 처음부터 입에 한 번도 댄 적이 없던 터였다. 그럼에도 ‘모름지기 여학생은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일종의 편견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흡연인구에 관한 지금의 정확한 통계를 자신 있게 들이댈 수는 없다. 그러나 남자의 흡연인구는 줄어들고 있음에 반하여 여자의 그것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의 흡연층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여자들의 흡연은 그렇지만 나의 배우자 후보나 배우자의 그것은 쉽사리 용납을 하지 못한다. 이는 솔직히 이기적인 행태로 보인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보다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다’라는 것이 더욱 설 들력이 있어 보인다. 나의 흡연에 관한 가치관은 그대로다. 미국으로 이주한 상구의 지금 생각은 어떠할까. 담배란 단순한 기호품에 불과하고 흡연 비흡연은 취향의 문제임을 인정하여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떨까를 한번 더 생각한다.


친구 용식이가 부탁한 두 번째 영문초록 작성에 도움을 준 답례인 미팅에 나는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상구는 그렇다 치자. 나는 두 번째도 미팅에 참석하는 대신 잡채밥 곱빼기를 용식이로부터 답례로 얻어먹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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