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나

by 그루터기

“아니 출렁다리로 건너오지 않고 어느 쪽으로 왔다고?”

“임시 교량이 없어졌어. 큰길로 들어서 봉곡교를 건너 강선대를 지나 둘레길로 왔다니까”

“자네 도대체 지능지수가 얼마인가? 머리는 그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귀촌하자마자 어제는 고향 절친 일행과 광란의 밤을 보냈다.


비단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둘레길 코스 인근에 친구는 컨테이너 박스로 별장을 마련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이곳에서 회포를 풀었다. 육중한 드럼통을 반으로 쪼개어 만든 BBQ 장비에 별장 주인장이 몸소 제작한 참숯도 동원했다. 길쭉한 직사각형의 대리석 불판 위에 삼겹살과 곱창을 부지런히 올렸다. 막걸리와 소주잔의 바닥이 뚫린 듯했다. 힘차게 굽이치는 물길을 바라보며 들이켜는 알코올은 이미 맹물이 되었다. 호황을 맞은 전성기의 업소 피크타임에 흘러나오는 것 못지않은 ‘7080 음악’은 취기를 한층 더 돋웠다. 교교한 달빛도 이에 가세했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각 나의 애마인 아반떼를 찾아 다시 친구 별장으로 향했다. 음주운전을 피하기 위해 전날 밤 친구의 별장 인근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70년대 초반 중견가수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는 까까머리 중학생도 누구나 따라 부를 정도였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삼거리’를 연상케 하는 옛 형제상회 분기점을 뒤로하고 모교인 중학교를 오가던 길로 들어섰다.


예전의 우리는 각자의 가방끈 두쪽을 모두 한쪽 팔목 위에 걸고서 삼삼오오 걸어서 등굣길에 올랐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종이배를 냇물에 띄웠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아까운 공책 한 장을 쭉 찢어 종이배를 접었다. 길의 왼편 맑디 맑은 도랑물 따라 떠가는 종이배에 우리는 걸음의 속도를 맞추었다. 신선한 공기와 풀내음은 반백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했다.

약 2개월 전 친구의 별장을 들를 때와 상황은 변한 것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트레킹 코스를 잡았다. 되도록 지름길을 찾아 나섰다. 몇 백 년의 위용을 여전히 자랑하는 송호리 솔밭의 위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것이 패착이었다. 이미 출렁다리는 왼공된 채 테이프 커팅식만을 남겨두었다. 전에 신세를 지었던 임시교량은 이미 그 모습을 감추었다. 출렁다리 아래 마련했던 임시교량을 가로지르면 친구의 별장에 짧은 시간 내에 도착이 가능했다.

‘이 것 참 낭패네 어떡하지?’

출렁다리 입구에는 공사가 완공되었음에도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버젓이 버티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약 40년 내외의 역사를 자랑하는 봉곡교를 건너는 코스로 들어섰다. 이어 둘레길을 거쳐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돌고 돌아 예상보다 2배나 많은 시간을 써가며 목적지로 들어섰다. 그런데 출렁다리를 넘어 다니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에겐 예삿일이었다. 그저 “통행금지”라는 팻말을 금과옥조처럼 받들었던 내게 잘못이 있었다.


문제의 출렁다리 입구에서 친구와 한 번 연락을 해보았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었을 터였다.

머리가 ‘장식품’이 아닌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아직도 도대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멋적고 쑥스러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고향의 빼어난 풍광을 다시 여유 있게 감상하였으니 그나마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종이 박스의 비닐 테이프를 뜯어내고 ‘스크랩 책자’을 꺼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다시 책자를 모두 일일이 묶어서 내놓아야 합니다.”

참으로 난감했다. 약 10여 년 전부터 나는 독특한 취미를 이어왔다. 10개 내외의 일간지를 동시에 구독했다. 그중 모든 칼럼과 주식시장, 경제, 문학 등 관심 분야를 복사했다. 그런 다음 그 용도를 다한 ‘투자신탁 설명서’ 등의 책자에 물풀을 동원하여 꼼꼼하게 각 페이지마다 꼭꼭 눌러 붙였다.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고이 보관해두었다가 현역에서 물러난 후 여유 있게 정독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지식의 외연도 넓어지고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예상했다. 이에 제법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었다.


규격이 통일된 박스에다 예전 어머니가 된장이 담긴 옹기단지에 장아찌용 무를 채우듯이 차곡차곡 챙겨 고이 보관했다. 내가 새로이 닻을 내린 고향 보금자리 별채 창고의 너른 공간은 이‘신문스크랩 책자 박스’로 금세 가득 채워졌다. A4 용지, 물풀 구입비, 책자를 실어 나르는 운임 등 금전 대가나 시간의 희생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에 이 많은 분량의 지식(지혜) 보고를 반드시 정독할 의무를 당연히 느꼈다.

이제 나도 어느덧 이순을 훌적 넘어섰다. 주위로부터 이제는 여러 부문에서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시기라고들 자주 듣고 있다. 그 첫 번째 미션으로 이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스크랩 책자’를 포기하기로 했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도 하고 시간적인 제약도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아까운 보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시나 소설 인문서적 등 단행본을 집중하여 읽기로 했다.

오늘 오전에 면사무소를 찾았다. 이 스크랩 책자의 처리에 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담당 직원은 원리원칙에 입각한 답변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 따르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틀 정도면 이 책자를 분리하고 다시 묶어 도로가에 내어놓는 일을 충분히 마무리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음이 금새 드러났다. 이 책자는 다른 단행본과 사이즈, 부피, 재질 등이 전혀 달랐다. 이 일에만 매달리는 인부를 일당 10만 원에 2명을 모아도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에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반 백 년이란 오랜 세월을 창고에서 버티던 고색창연한 입식 책상용 의자에 걸터앉았다. ‘생각의 의자’가 떠올랐다. 드디어 나의 ‘장식품’을 가열차게 가동했다. 주위 지인을 찾아 나서고 검색도 했다. 고물상 몇 곳을 수소문했고 고향을 오랜 세월 지키고 있는 후배에게 조언도 구했다. 전직 공무원 선배와도 연락이 닿았다.

“지금은 일정이 빠듯하여 다음 주 화요일에나 수거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고물상 사장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놀림을 받는 내 머리를 그나마 가동한 대가치곤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깔끔하고 시원하게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웠고 우스꽝스러웠다.


조금 전 면사무소 공무원이 그저 매뉴얼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이 아니라 고물상에 한번 알라보라고 귀띔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 팔다리를 고생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고물상 사장이 예정보다 좀 늦게 이 보물단지의 수거하겠다는 소식이다. 밤 10시를 훌적 넘긴 시각임에도 나는 여전히 이 신문스크랩 책자의 정리에 다시 나선다.

내 머리는 정말 장식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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