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천당과 진짜 지옥을 오가기

세상에 공짜는 없다

by 그루터기

“이것, 네가 직접 그린 것이야?”

“예, 맞습니다. 선생님!”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미술 과목 담당 송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그날은 스케치북을 중간 점검하는 날이다. 지난주 미술 시간엔 정물화를 그리는 것이 미션이었다. 교탁 위에 책가방과 교실 한구석을 지키던 화분을 밀착하여 올려놓았다.

“현기야! 오늘 체육 시간에 나 대신 나갈 수 있니?”

친구 중길이는 주번인 나한테 물었다.

“그래, 그렇게 해줄 수 있어.”

“그럼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줄래?”

“그게 무엇인데?”

“지난주 미술 시간에 못다 그린 정물화 좀 잘 그려주렴.”


본래 미술반에 몸을 담고 있는 중길이는 그까짓 것, 정물화 그리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이렇게 해서 같은 반 친구인 우리 둘 사이의 ‘작은 거래’는 어렵지 않게 성사되었다. 체력이 넘쳐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교 2년생이지만 온몸을 움직여야 하는 실외 체육 시간을 기다리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일주일 단위로 맡는 주번 두 명 중 한 사람만이 이 실외 체육수업 출석에 유일한 예외를 인정받았다. 교실에 홀로 남아 같은 반 친구들의 책가방 등 소지품을 지킨다는 그럴듯한 핑계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그림을 그릴 때와는 달리 나는 무엇엔가 잠시 홀려 있었나 보다. 친구 중길이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밑그림 위에 색상을 입히는 작업에 평소 내가 가진 역량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여러 가지 색상을 동원하는 대신 나는 갈색 물감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다만 이엔 범상치 않은 ‘특수기법’을 활용했다. 물감과 배합하는 물의 양 즉 배합비에 차등을 두고 붓칠 회수를 화초 잎사귀나 줄기 부분마다 달리했다. 이른바 ‘농담’의 여러 단계를 구현하는 독특한 기법을 처음으로 과감하게 시도했다. 나만의 ‘개똥철학’이었다.

그림을 모두 완성한 후 아주 초라한 아마추어에 불과한 내가 볼 때 스스로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일종의 자기만족을 넘어 ‘자아도취’에 가까웠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그럴 듯했다. 앞으로 내 평생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을 듯했다. 미술 선생님은 이번 스케치북 점검 결과를 1학기 말 평가에 아주 큰 비중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이 ‘명작’ 밑그림의 저작권은 오로지 중길이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미술 선생님의 물음에 눈 한쪽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 있고 소신에 찬 우렁찬 목소리로 거짓 답변을 했다. 드디어 기말고사 미술 점수가 공개되었다. 무려 95점이라는 너무나 분에 겨운 결과를 나의 멀쩡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수’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어느덧 세월이 훌쩍 가버렸다. 2학기 미술 과목 평가는 지난번과 달리 ‘단판 승부’였다. 자신의 왼손 주먹을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가위’ 모양을 만든 뒤 이를 4B연필로 스케치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나머지 하나는 저명한 미술가의 작품을 보고 감상문을 적는 것이었다. 50분 시험 시간 중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완성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나는 졸지에 일격을 당했다. 저번처럼 프로선수인 미술반 친구의 도움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어느 누구 도움도 없이 오롯이 나 자신의 역량과 실력으로 승부를 해야 했다.


감상문을 적는 문제도 옆 친구의 글을 훔쳐볼 수가 없었다. 객관식 사지선다형이 아닌 주관식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옆 친구의 답안을 설령 그대로 베끼더라도 나중에 채점할 때 그것이 금방 탄로 날 것이 뻔했다.


아무리 4B연필을 이리저리 작동을 시켜 봐도 내가 가진 실력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었다. 감상문을 적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콘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답안지 공간을 메우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약에 쓰려 해도 요령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범생이 스타일’이었다. 오랜 세월 이후에나 습득한 이른바 ‘썰’이라도 푸는 ‘이빨 실력’을 갖추기 이전이었다. 법대 4년을 포함하여 약 10년간 갈고 닦은 이 썰을 푸는 ‘이빨 실력’이 쌓이기 이전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답안지를 거의 백지로 내밀었다. 실상이 몽땅 드러났다.

지난 학기에 과분한 점수를 받은 데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기록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아들었다. 겨우 기본 점수를 턱걸이한 43점이었다. ‘가’라는 가장 아래 단계의 평가를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 학기엔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내 생애 최고점수를 받았으나 이번엔 낭떠러지로 추락을 했다. ‘수’에서 ‘가’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세상에 우연이나 운수 좋은 일이란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특히나 나에겐 더 그러했다. 반칙을 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수단을 동원하여 좋은 결과물을 줄곧 얻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대학을 가는 놈들은 몰라도 최종학력이 고교로 마감되는 녀석들에겐 생활기록부가 무척 중요하거든. 한 과목이라도 ’가‘를 받으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 있어. 정신 좀 차려.”

체육 선생님의 경고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나는 다행히도 대학 진학을 했다. 고교 시절 내 생활기록부엔 ‘가’ ‘가’ ‘가’ 이렇게 서너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다. 다양한 경험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말로 억지 위안을 삼는다.


최근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귀촌했다. 기나긴 학창 시절과 직장생활 당시 모아둔 책더미와 서류 등을 대대적으로 정리를 했다. 이 와중에 추억과 사연이 배어있는 몇 가지의 보물단지를 캐내는 행운을 얻었다. 그중 제일 첫째로 꼽는 물건이 고교 2학년 시절의 스케치북이었다. 약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 당시 그림물감의 색상과 농담을 그대로 꼬옥 껴안고 있었다. 사연과 추억이 되살아났다. 무척이나 고맙고 반가웠다.

“당신은 본인이 노력한 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가 없어. 주위의 도움이나 덤으로 행운을 얻는 일을 기대할 수 없는 팔자야.”

가끔 심심풀이로 찾는 점술가의 반복되는 결론이다.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면 잠시도 쉬지 않고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해서 부지런히 밟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오늘은 친구 중길이에게 연락을 한번 해보려 한다. 친구의 최신 작품 하나만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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