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향 친구들이 20대 문턱을 막 넘어서던 시절이었다. 민족 고유 명절인 설날 이틀 전 늦은 오후 시각이었다. 이번에도 절친 진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주인장의 장남 진수의 호출을 받은 나는 누나의 가게 진열장 한 켠에 자리를 하고 있는 30도 소주 1.8리터들이 유리병 하나를 냉큼 쥐어 들었다. 아버지가 60년대 초반에 즐겨 입던 철이 지난 소재가 매우 두텁고 투박한 오버코트 차림으로 눈썹을 휘날리며 모임 장소로 내달렸다.
당시는 담배를 피지 않는 친구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여 왕따를 당해도 하소연하기가 쉽지 않았다. 담배 연기 덕분에 이미 오소리 굴이 된 공간에 먼저 모인 친구들이 어림해서 열 대여섯명은 족히 되었다. 안방 오른쪽에 길다랗게 자리잡은 너른 사랑방엔 서너 그룹으로 나눠 자리를 잡고 각자의 본업 내지 주특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막걸리와 소주잔을 연신 주고받았다. 일부는 고스톱 경기에 몰입했다. 번듯한 양옥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온 죄에다 항상 반겨 맞는 진수 모친 덕분에 양대 명절 전후론 단골 모임장소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소나무가 많은 동네에 사는 친구 길주는 잠시 막걸리 잔을 내려놓곤 그간 본인의 근황과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길주는 당시만 하더라도 우람한 근육 덩어리 체격에다 밀림 속의 호랑이도 단 판에 때려잡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특히 팔씨름 부문에선 면내는 물론 바다가 없는 행정구역을 통틀어 어느 누구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20대 건장한 청년이었다.
최근 길주는 70년대말에서 80년대 초 청계천 인근의 밤무대에 놀러갔다. 그런데 여기서 예정에 없던 팔씨름 대회가 열렸다. 밤업소 내의 경기장을 지켜보던 중 드디어 본인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이런 대결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길주는 보무도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팔씨름’ 경기였다. 그러니 정상에 오른 이에겐 황소는 아니라도 똘똘한 송아지는 몰고 갈 기회가 바로 눈앞에 다가선 것이었다. 준비 운동으로 몸을 가볍게 풀고 긴 심호흡을 한 후 상대 선수와 손아귀를 맞잡았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마이크를 한 손에 잡은 진행자와 다른 별도의 행사요원으로 보이는 남정네가 성큼 성큼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은밀하게 귓속말을 건넸다.
“사장님, 저희들 내부 사정상 저 친구를 밀어야 하니 죄송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그럴듯하게 무너져 주세요.”
흔히들 말하는 이른바 ‘주최측의 농간’과는 약간의 결이 다른 사태가 발생했다. 길주는 평소의 용맹무쌍하고 돌직구 스타일인 본인의 정체성에 맞지 않게 이를 선뜻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쉽게도 송아지 한 마리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쏟아냈다.
이에 친구들의 의견은 대략 반반으로 나뉘었다.
"에이 나 같으면 포기하지 않았을거야."
"그거 세상일이란 것이 그런 거야.”
주최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길주의 결단이 의외라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좀 많았다. 나는 이 정도에서 "법과 정치"에 관한 간단한 담론이 떠올랐다. 법을 우선시한다면 길주는 원칙대로 자신의 실력을 당당히 겨루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엔 주최측 선수의 체면을 세워주는 쪽을 택했으리라. 현실은 정치 우위의 사회라고들 하니 당시 길주의 팔씨름 경기에서의 처신은 그동안 다른 친구 대비 보다 많은 사회생활의 경험에서 내린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
길주는 최근 면소재지를 출생지로 둔 여자동기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런데 앞날에 작지 않은 걸림돌 하나가 생겼다. 대한민국의 20세 전후 남자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병역문제가 그것이었다. 다른 보통 친구와 달리 배우자와 2세 등 부양가족을 보살펴야 했다. 복무기간이 30개월을 넘는 현역병 생활을 감당하다 보면 가계를 이끌어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은 뻔했다.
이윽고 청주시 소재 입영 대상자 판정을 위한 지방병무청에 출두를 했다. 체격 등과 관련된 기본 검사를 마치고 병영생활 부적격자를 걸러 내기 위한 인성(적성)검사를 했다. 30여개월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기본권의 제약이 따르는 별도의 세계에 묶인다는 생각을 하면 앞날이 깜깜했다.
이에 길주는 비장한 각오로 일생일대에 커다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체격과 신체의 질병 등의 영역은 각종 의료기기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하다 보니 개인의 힘으로 좌우될 수 없었다. 이에 인생검사에다 승부를 걸었다. 온전한 병역면제는 아니라도 자택에서 출퇴근 방식으로 이를 대체하는 보충역 판정을 최소한 목표로 했다. 이 적성검사엔 4지선다, 진위형, 단답형 등 여러 스타일을 혼합한 문제지가 주어졌다. 여러 항목 중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몹시 불안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기가 무섭다" 등 진위형 물음에 통상인과 정반대로 표기를 하기로 작정했고 임무를 정확히 완수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러한 길주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드디어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결국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검사장 밖에서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던 길주의 배우자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에 내외는 승리의 하이 파이브와 포옹, 만세삼창으로 성공 세리머니를 마무리했다. 삶에 대한 처절한 의지는 정말 위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