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일일 가격 제한폭인 15%까지 올랐다. 2007년 9월경이었다. 포스코가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역사적인 일임에 분명했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듯했다. 적립식 방식을 통해 기반이 탄탄한 자금이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로 꾸준히 몰려든 것이 가장 큰 원인일 듯 했다. 나도 고객 계좌 예수금으로 포스코를 이미 일정한 비율로 편입했다. 그중 일부 고객에겐 단기 매매로 이미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송 점장! 포스코, 그것 우량 대형주인데 좀 더 가지고 갔어야지, 왜 그리 일찍 팔았어?”
보다 오랜 기간 보유하여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던 고객들의 별 악의 없는 어필도 가끔 이어졌다. 코스피가 2,000포인트를 돌파한 이후 우리 주식시장은 장기 조정세에 들어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했다. 회사 측은 이에 기승하여 계열사와의 합병을 구실로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령과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이른바 ‘살생부’가 작성되었다. 나도 이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렸다. 나는 이에 응하지 않고 회사에 남기로 비장한 결정을 내렸다. 결국 200여 명의 동료가 직장을 떠났다.
나는 수도권의 한 점포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새로이 고객을 배정받았다. 초임 책임자 시절 나와 같은 점포에 근무한 인연이 있는 퇴직 직원인 박 대리도 내 고객군에 포함되어 있었다. 박 대리는 몇 해 전에 받은 희망퇴직금과 다른 여유 자금을 한데 모았다. 계좌를 살피던 중 나는 적잖이 놀랐다. 포스코 한 종목에 올인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꺼번에 매수하지 않았고 분할 매수했음은 계좌의 이력을 뒤져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박대리 계좌의 투자 성적은 초라함을 면할 수 없었다. 무려 마이너스 43%의 참혹한 결과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안타까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2007년 포스코는 역사상 최고가인 765,000원을 찍은 후 352,000원의 최저가로 주저앉았다.
“심 사장님, 나머지 자금으로 모두 포스코를 추가로 매수하겠습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부사채)에서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에서 우리나라 증시도 벗어날 수 없음은 물론이었다. 국내이냐 해외이냐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간접투자상품의 대명사인 모든 펀드 투자 성적표는 초라함을 넘어 참혹함을 면할 수 없었다.
나는 전임자로부터 인계받은 고객들에게 기존 가입 펀드의 일부를 털어 그 자산으로 국내 시장 종목 투자에 나서기로 고객과 이미 합의를 보았다. 내 포트폴리오는 주로 우량 대형주였다. 이에 포스코도 포함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코스피는 800포인트 내외의 역사적 저점을 찍은 후 서서히 상승세로 전환 중이었다.
나는 심 사장 계좌의 자금으로 포스코를 두 번에 나누어서 매수했다. 평균 매입단가는 45만 원 내외였다. 9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근무를 마친 후 이 점포를 내가 떠날 때까지 심 사장이 보유 중인 포스코는 투자 원금 회복에는 아직 요원했다. 심 사장의 나머지 50%의 자산으로 15여 회 이상 수익을 올렸음에도 전체 포트폴리오의 성적은 여전히 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포스코의 주가는 20만 원을 하회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25일 코스피는 역사적 고점인 3,316포인트를 찍었음에도 포스코의 시세는 여전히 35만 원 언저리에 머물렀다. 최고점 대비 50%에 모자랐다.
아무리 우량 대형주를 분할매수했음에도 투자 수익은커녕 오랜 세월 동안 원금 회복을 기대하기란 난망했다. 오히려 방망이를 짧게 잡고 포스코를 단기매매로 이어가거나 보유 중이던 물량을 일정 시점에서 손절매를 감행한 후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다면 전체 포트폴리오의 수익이 플러스로 돌아설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