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삼성전자 주가가 밀리면 당신 손모가지를 자를 거야. 알았어? 최 부장!”
“ 예, 예! 사장님, 그게 아니라 삼성전자 주가가 요즈음 며칠째 조정을 받았어요. 오늘 사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럼 에이, 한 장만 사보자고. 그래 한 장 사지!”
오늘도 양 사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1억 원 상당 추가 매수했다. 종래 종목 투자는 삼성전자 한 종목으로 승부를 보기로 종합자산관리자인 나와 합의를 했다. 단, 오늘 추가 매수에는 무시무시한 조건을 달았다. 주식을 매수하되 당장 내일 종가가 오늘 매입가보다 밀리면 나의 손모가지를 절단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나는 내일부로 멀쩡하던 손모가지가 날아가 장애인이 될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나는 이런 엽기적인 조건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셈이 되었다. 다음 영업일이 밝았다. 다른 날보다 장 개시부터 마감 시각까지 나는 해당 주가 추이를 가슴 졸이며 더욱 유심히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내내 등락을 거듭한 끝에 천만 다행히도 전날 종가보다 밀리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양쪽 손모가지를 다시 확인했다. 만약 종가 시세가 전일 종가보다 하락하였으면 멀쩡한 손모가지가 최소한 한쪽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일생일대의 커다란 허들을 넘어섰다. 양 사장은 재력가 특유의 까칠함과 카리스마를 가졌다.
양 사장의 금융자산만 규모는 대략 150억 내외로 추정되었다. 자신의 금융자산을 메이저 증권사 대여섯 군데 나누어 맡겼다. 우리 회사 여의도 영업부에서 우리 지점으로 자산을 이관했고 내가 첫 관리자가 되었다. 전임 관리자에겐 결코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양 사장은 VVIP 고객으로 불리는데 결코 손색이 없었다. 대부분의 고액거래자는 자신의 자산관리자 평가에 인색하다. 약 20여 년이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나의 경험상 그랬다. 별로 틀린 판단은 아니다.
나는 향후 양 사장의 자산관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양 사장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개략적으로 먼저 내보였다. 자신은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싫다고 했다. 다른 금융기관에서 이미 위험자산에 투자하여 많은 손실을 본 경험이 있음이 분명했다.
이에 나는 조심스럽게 우량 채권과 파생결합증권을 주력 포트폴리오로 권유했다. 그런데 양 사장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파생결합증권인 ELS, DLS에 투자하여 커다란 손실도 경험했다. ELS의 '이'라는 발음도 자신 앞에서 꺼내지 말라고 했다. '이'가 갈린다고 했다. 자신은 비록 수익의 규모가 작더라도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전진하는 상품에 투자할 것이고 이른바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은 역사적 저점을 찍고 턴어라운드하는 형국이었다. 이에 양 사장은 현재까지의 포트폴리오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채권이 아니라 주식에 투자할 때라고 자신의 최근에 바뀐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다 보니 종래의 방침을 다소 수정했다. 종목 투자를 하되 우량 대형주 위주로 그것도 삼성전자 한 종목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최근 지속적인 우상향을 해온 삼성전자 주가가 드디어 100만 원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양 사장은 그동안 분할 매수한 삼성전자의 평가액이 10억에 근접했다. 단기간에 10%를 넘어서는 양호한 수익을 기록 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의 향후 주가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사장님, 단기간에 삼성전자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게다가 증권회사마다 삼정전자의 목표주가를 올리는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일단 수익을 한번 실현하시지요?”
“에이, 이 사람아! 삼성전자는 곧 200만 원도 간다는데 좀 더 두고 보자고.”
이후로 결국은 삼성전자 주가는 가격과 기간 조정이 길어졌다. 결국은 나중에 일부를 손절매하였다. 자산관리자의 권유를 듣지 않는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2013년 3월 일본에는 어마어마한 지진과 해일 등을 동반하는 쓰나미가 닥쳤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일거에 망가졌다. 이리하여 글로벌 금융 위기 후에 반등을 이어가던 세계 증시는 또 한 번의 변동성이 큰 롤러코스터 장세가 되었다.
양 사장은 오늘 오전 일찍이 나를 찾았다. 무엇인가 단단히 작정을 하고 나선 것이 얼굴에서 충분히 읽혔다.
“최 부장, 나는 그동안 ELS의 기초자산에 코스피 200 하나만 들어 있는 상품만 투자했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H/H지수도 들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된 거야?”
얼굴도 몹시 상기되어 있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신줏단지 모시듯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디자인이 제법 세련된 서류용 가방을 열었다. 각 기관별 금융자산의 계좌 현황 내역을 모아 놓은 파일철로 나의 책상 바닥 위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래, 내가 노낙인이라는 조건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런데 기초자산은 한 개가 아닌 두 개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야? 말 좀 제대로 해보아.”
“사장님, 제발 진정하세요. 제가 20여 년의 경험이 있어요. 참고 기다리면 수익으로 보답받는 좋은 기회가 올 겁니다. 여기 이렇게 그저 어리바리하게 앉아 있는 저도 나름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게다가 상품에 관한 설명도 제대로 했습니다. 사장님의 확인 근거도 완벽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주위에 아는 사람도 제법 있습니다.”
나도 강온 양면을 구사하는 양동작전으로 대응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나로선 별로 밀릴 것이 없었다.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점 출입문을 나서는 양 사장을 배웅하러 따라나섰다. 나는 본디 고객에게 오버액션을 하지 않는다. 단, 양 사장은 예외였다. 양 사장의 보무도 당당한 검은색 고급 승용차의 뒷문을 닫아 주었다. 이어 허리를 90도 이상 구부려 배웅하였다. 나름 양 사장은 나의 이런 의전관행을 실컷 즐겼으리라, 하는 수가 없었다. 결국은 고객이 우리 직원들에게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았다.
“최 부장, 원래 고객은 수익이 나지 않거나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으면 그런 거야. 나 가겠네. 다음에 또 봄세.” 나로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뜻밖의 반전이었다.
양 사장은 보통 2주일마다 하루를 정하여 자신의 거래 금융기관을 순방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체크했다.
“연말에 가서 제일 부진한 곳은 거래를 모두 끊어버릴 거야.”
늘 양 사장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저번에 특정 상품에서 손실이 나자 양 사장은 몸소 업무 창구에까지 나서 수익률 부진에 대한 응징 차원이라며 3억을 인출한 바도 있다.
나는 약 10년간의 긴 근무기간을 마치고 다른 점포로 발령을 받았다. 양 사장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의외로 양 사장은 헐레벌떡 나를 찾았다.
“제가 사장님 자산을 계속 관리해 드리면 안 될까요?”
“이 사람아,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 지금까지 당신이 무얼 잘한 것이 있다고, 후임자도 정하지 말고 인수인계도 필요 없어. 그래도 난 당신을 만나서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중간 이상은 얻은 것 같네.”
양 사장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본래 남의 칭찬하는 데 인색한 재력가임을 감안하면 나는 그것을 아주 높은 단계의 칭찬으로 새겨들었다. 나는 아직도 양쪽 손모가지가 멀쩡함에 감사한다.
고객의 피와 살이 붙어 있고 땀이 밴 소중한 자산을 관리하는 종합자산관리자의 책임은 막중하다. 우선 고객의 성향과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테마성 상품이나 종목, 변동성이 큰 종목에 투자는 지양하는 것이 옳다. 향후 경제 전망이나 여러 가지 분석자료 등을 참조하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이들을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자신만의 스타일과 원칙을 꾸준히 개발하고 지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고객에겐 수익으로 보답하고 자산관리자도 성장하여 상호 윈윈 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나는 소신이 있는 영원한 종합자산관리자였다는 평가를 가장 좋아한다. 지금은 잠시 현역에서 물러나 있지만 머지않아 찾아올 컴백을 오늘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