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간병인만이 그런 멘트를 날린 것이 아니었다. 역대 간병인의 멘트는 대동소이했다. 의례적인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같은 해 10월 초 형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기민하게 대처했지만 형은 ‘편마비’의 다른 이름인 반신불수가 되었다. 나는 인맥을 총동원했다. 형의 재활을 도와 스스로의 힘으로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동문 후배 군의관으로부터 추천받은 뇌질환 전문 재활병원에 운 좋게도 입원을 할 수 있었다.
혼자서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는 개인 전담 간병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가족이나 친인척이 간병을 맡기로 한다면 생업을 포기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간병인을 구해 맡길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간병비는 차등화되어 있었다. 혼자 거동할 수 있는지 여부, 남녀 환자 구분, 몸무게, 장애 정도에 따라 달랐다. 일당 기본 10만 원에 난이도에 따라 추가로 간병비가 책정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치료비 수술비 등과 달리 간병비는 신용카드로 결제가 불가했고 전액 현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일주일 단위로 간병비를 송금했고 매월 이틀간의 유급휴가를 보장해야 했다. 하루 삼시 세끼 나오는 환자 식사에 더하여 간병인 몫으로 공깃밥 하나를 추가했다. 이러다 보면 비용 총액은 월 35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간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꼼짝없이 이 무거운 짐을 지어야 했다. 중견기업 신입사원 월 급여에 필적했다. 이런 엄청난 경제적인 대가를 치르더라도 환자가 재활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모든 보상을 받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형이 자신의 힘으로 거동을 하여 일상생활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대단히 부담스러운 간병비를 현금으로 꼬박 건네줌에도 간병인과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할 수 없는 형은 을의 처지를 넘어 병으로 전락을 했다. 어쩌면 간병인이 이미 갑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사정상 기존 간병인을 교체할 경우 사전에 통보를 하면 치명적인 불이익이 돌아왔다. 간병인의 서비스 질이 즉시 추락했고 심지어 보호자가 부재 시 형에게 닥칠 수 있는 작은 해코지도 걱정을 해야 했다.
교체를 통보받은 간병인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은 물론 때론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태업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그래서 후임자를 먼저 물색해 놓은 후 하루 전 아니면 당일 통보를 하기도 했다. 환자 보호자 가족 모두의 가장 큰 목표는 간병인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때론 ‘수고비’라는 명목으로 웃돈을 건네기도 했다. 환자의 친구나 친인척이 문병 땐 간병인은 적지 않은 수고비를 직접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회사의 시용자와 근로자의 관계와 달랐다. 노동력 이외 자산이 없는 근로자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갑이라면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사용자, 갑 근로자, 을의 패러다임이 보통이다. 이에 반해 환자 쪽에서 간병인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간병인이 갑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혹시나 환자에게 불편이나 작은 해코지라도 닥칠까 봐 가족들은 전전긍긍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제 점심 식사 시간 임박해서 목사님과 신도 몇 분이서 형을 찾아 문병 예배를 드리는 고마운 일이 있었다. 환자의 쾌유와 성공적인 재활을 기원하는 기도가 이어졌다. 이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문병객 일행에게 이 간병인은 무의식적으로 한마디를 뱉었다.
“에이, 제기랄! 하필이면 이때 왔어! 나는 점심도 제때에 먹지 못하게 말이야.”
형의 치료와 재활 등을 위해 일을 총괄하는 내게 이 중요한 비하인드스토리는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간병인 교체를 내가 방금 통보하던 순간이었다. 간병인도 결코 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교체되는 이유를 정확히 잘 알고 있었다.
“어제 문병 예배 때 제가 한마디 한 것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병원마다 간병인을 파견할 수 있는 인력회사는 세 군데로 제한되어 있었다. 더구나 전문 재활병원만을 주로 오가는 간병인 인력 풀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어느 병원 환자, 누구 하면 간병인들 사이에서 이미 정보가 공유되고 금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러니 섣불리 간병인을 자주 교체하다 보면 나중엔 특정 환자를 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대부분 간병인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에게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보호자가 배석 시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꾸미고 부재 시엔 제멋대로 을의 입장이 된 환자를 내동댕이치거나 몸무게가 너무 무겁다거나 하며 심지어 비속어도 서슴지 않았다. 소명 의식이나 프로 근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병상에서 환자를 일으켜 세우거나 누일 때 실력이 뛰어난 유도선수가 상대를 제압하듯이 내동댕이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환자는 이를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향후 더 많은 보복을 당할 염려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소명 의식이 있는 프로 간병인이 아쉬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