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안 되는 거지? 며칠을 참아야 하는 거야?”
“아니야! 아무 상관없어. 즐겁게 많이 마시라고.”
절친 심 원장은 방금 스케일링을 마친 내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시원한 답변을 냈다.
“준수야, 2주일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죽을 수도 있어.”
대학 2년 시절이었다. 같은 하숙집 룸메인 대선배 치대 본과 4학년 형이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의료원 치과병원에 들러 스케일링을 마친 내게 가장 주의할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기억 때문에 심 원장에게 오늘 스케일링을 마친 후 필요한 금주 기간에 관해 물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스케일링'이란것이 내가 대학 2학년 시절과 지금의 그것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했다.
심 원장은 워낙 손꼽히는 애주가이다 보니 내게도 자신을 기준으로 내가 원할 법한 답변을 꺼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했다. 대학 2학년생인 나는 선배가 내린 2주간의 금주령을 완벽하게 지켜내느라 아주 큰 고생을 했다. 2주간 면벽기도라도 하듯 근신을 해야 했다. 별생각 없이 어쩌다 2주간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정한 의무 기간을 정해 놓고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어때? 자연치를 하나 처음 발치하니 갑자기 아주 팍 늙어버린 느낌이지? 이 자리엔 두었다가 임플란트를 심어야 할 것 같네.”
이른바 브리지 공법에 비해 임플란트 시술이란 훨씬 고난도의 복잡한 작업이었다. 많은 숙성 기간도 필요했다. 대략 6개월이었다. 처음 기초공사를 마무리한 후 정해진 세월을 기다려 격렬한 토목공사를 오늘에서야 마무리했다. 건축물 공사에서 목수와 토수 모두의 미션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종합 대형토목공사에 다름이 아니었다.
“야! 심 원장, 너무 아프다. 나도 웬만한 것은 잘 참는 편인데 좀 살살하자.”
평소 심 원장이 아니었다. 이 임플란트 공사 중에는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지 아예 무시해 버렸다. 칼, 끌, 망치, 드라이버, 톱, 장도리 등을 총동원해 내 천연 뼈를 자르고 쪼개서 이식을 하는 등 지난한 공정을 일사천리로 이어갔다. 입 안의 피부 점막이나 잇몸, 혀 등에 생채기가 나든 말든 막무가내였다. 절친인 내게도 안면몰수했다. 대형토목공사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내 입 안의 모든 부위가 성한 곳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좀 통증이 덜하고 상처가 적게 나도록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인정사정 보아주지 않으니 야속하기까지 했다.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할 것은 뻔했다. 그래도 그보다 더 궁금하고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저번 스케일링 때처럼 내일부터 당장 술을 마셔도 되는 거야?”
“어렵겠지만 이번엔 1주일만 참아. 염증이 생길 수도 있어.”
천하의 애주가인 심 원장의 답변은 방향은 달랐지만 이번에도 의외였다. 스케일링과 임플란트란 그 공사의 범위와 강도, 난이도 등이 같은 체급이 아님이 분명했다.
“심 원장, 대상포진 백신을 맞으려고 하는데 워낙 고가라서...”
“그거 맞을 비용으로 술이나 마시고 혹시 나중에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는 그때 가서 치료받는 것이 훨씬 낫지.”
이랬던 심 원장이다. 그런데 이번 임플란트 대공사를 완공 후엔 무려 1주일간이라는 긴 금주 기간을 지킬 것을 내게 진지하게 권유했다.
“준수야, 네가 지난번에 찾던 붕어찜 잘하는 곳에서 오늘 소주 한잔하는 것이 어때?”
고향 절친 경수는 오늘 내게 번개팅을 불쑥 제안했다. 순간 나는 적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임플란트 공사를 마친 후 오늘이 정확히 1주일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거래은행 중 J 은행만이 양편 넣기를 적용합니다. 차입금 이자 계산할 때 조심할 점입니다.”
내가 자금부에서 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1989년 이른바 12·12 증시부양책의 후유증으로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비록 하루 분의 이자를 더 수취한다고 했지만 차입금의 덩어리가 큰 경우 다른 은행 대비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오늘 절친 경수의 오퍼를 받아들이고 싶은 나로선 J 은행의 차입금 이자 계산방식인 ‘양편 넣기’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 7시에 그곳에서 보자고.”
양편이나 한 편이냐에 관해 굳이 심 원장에게 추가로 심층 질문을 던질 이유가 나로선 없었다. 만약 심 원장이 혹시 ‘한편’이란 답을 입 밖에 내면 오늘 붕어찜 맛을 보는 것은 물 건너가는 것이었다.
나는 현역 시절 어떤 사안에 관해 과세 여부에 관한 유권해석을 세무당국에 요구하는 일은 늘 신중해야 한다는 말은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앗, 그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좋은 세원이구나.”
이런 불행한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세무 당국으로선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여 어떻게 해서든 세수를 늘리는 것이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 애매할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법언도 갑자기 떠올랐다.
금주 권유 기간 계산방식에 관해 내가 심 원장에게 추가로 유권해석을 구했으면 그 결론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애주가인 심 원장은 형사 피고인이 아닌 내게 오늘부터 술을 마셔도 무방하다는 답변을 입 밖에 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러나 만의 하나 내 예상이 빗나갔을 경우엔 그렇다고 붕어찜 모임을 다음으로 미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번개 모임 오퍼를 받은 나로선 심 원장의 유권해석을 무시한 채 모임을 강행했더라면 개운치가 않았을 것이었다.
이번 경우엔 애주가인 내게 이 ‘양편 넣기 방식’이 붕어찜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준 일등 공신이었다. ‘애매할 때는 피고인이 아닌 애주가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