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나는 우리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준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대학 후배 의사를 찾을 수 있었다.
“환자분, 이 정도면 어느 곳을 가시더라도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을 겁니다.” 내과 후배 의사 소개를 받아 이곳에 왔다는 귀띔에도 불구하고 이 정형외과 의사는 매우 불친절했으며 까칠하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의사의 영업마인드를 곧장 과도하게 발동시켰다. 나는 대학병원으로 가겠다고 핑계를 대며 이곳을 급히 빠져나왔다.
며칠 후 나는 내 관리고객인 의사가 근무 중인 척추 관절 전문병원 한 곳에 더 들르기로 했다. “부장님, 이런 증상은 절대로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증상을 놓고선 이렇게 진단 결과와 의견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서 물리치료와 약물복용을 병행한 결과 다행히도 상당한 차도가 있었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알러지성비염으로 진단을 받은 지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났다. 회사에서 퇴직하기 약 2년 전 근처 병원을 찾았다. 온몸이 심하게 가려웠고 붉은 발진에다 때론 두드러기가 동반되어 참을 수가 었었다. 피부반응이라는 정밀 검사결과가 나왔다. 젊은 시절에 비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부문이 많이 늘어났고 그 정도도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우리 사무실에 자리한 빌딩의 피부과 전문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은 대학 선배가 이끌고 있는 곳이었다. 연고 병원인 것이었다.
내가 퇴직 후 최근까지 일 년 동안 극한 직업에 종사하던 중이었다. 몸을 많이 움직여 일하는 직종에다 풀, 먼지, 낙엽 각종 쓰레기에 자주 노출되는 열약한 근무환경을 피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종래보다 더 심한 발진, 두드러기 가려움 증상이 다시 나를 괴롭혔다. 근무지에서 가까운 병원을 우선 찾아 나섰다.
다급해진 나는 평소 소통이 잘 되는 고교동기인 내과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했다. 알레르기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피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고 증상이 심할 경우엔 응급실을 활용하라는 팁도 가르쳐 주었다. 피부과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다는 것이 좀 어줍은 일이었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님에도 성의 있는 답변을 받았으니 그저 고마웠다
정형외과 전문의 심원장에게 얼굴 점 빼기 시술을 받은 후 나는 종래 드나들던 대학선배 피부과 전문의 백원장을 다시 찾았다. 연고가 있으니 최근 증상과 관련하여 편하게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묻고 싶어서였다.
“얼굴의 점은 저한테 시술받은 것이 아니지요?”
“아닙니다. 고교동기가 무료로 서비스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주기가 쉽지 않은 것인데...”
나는 이 병원 백원장에게 최근 가려움증, 발진 두드러기 피부건조증에 관한 상담을 받았다. 먼지, 풀, 낙엽, 각종 쓰레기 등 열약한 환경 때문에 증세가 심해진 것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백원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본적으로 피부건조증에다 알러지성 체질이 주요 원인이라 일컬으며 최근 다른 곳에서 얼굴 점제거 시술을 받은 내게 생뚱맞게도 갑자기 적외선치료를 권유하고 나섰다. 대화 도중 내가 이미 오래전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실토하자 백원장은 아주 반색을 했다. 이어 최근 근무지 근처에서 처방으로 받은 보습제의 효과에 관해 묻는 내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 보습제보다는 훨씬 효과가 뛰어난 @만원 상당의 보습제가 준비되어 있다며 이 특별한 보습제를 권했다. 이는 실손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간호사가 안내한 적외선 치료실로 들어섰다. 이 적외선 치료란 것은 5분 내외 짧은 시간에 마무리되었다. 별로 성의가 없었고 그저 수박 겉핥기에 딱 맞는 치료에 불과했다.
“아니, 이런 적외선 치료가 효과가 있나요?” “이것 아주 좋은 것입니다. 우리 원장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은 모두 하셔야 합니다.”
환자의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가 검사나 처치 등의 필요 여부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함에도 이 간호사의 서툰 안내와 대응에 이 병원에서도 이른바 ‘영업마인드’가 과도하게 작동이 되고 있음이 내게 쉽게 읽혔다. 이후 간호사는 보습제에 관해 실손 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챙겨주었다.
이렇게 연고가 있는 환자에게도 서슴없이 과도한 영업마인드를 발동하여 과잉진료 내지 처방을 이어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의사도 자신이 거느리는 간호사, 액스레이 기사 물리치료사 등의 고용을 책임지다 보니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눈에 쉽게 뜨일 정도로 노골적인 과잉 진료를 이어가는 것은 환자의 의사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돨 수 있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의 본분’과 ‘영업 마인드’ 사이의 적정한 균형을 찾는 것은 영원한 과제로 보였다. 명백히 과잉진료로 보이는 의사의 진단, 처방 시술, 수술, 투약에 환자의 용기와 소신이 있는 거부권의 행사도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