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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22. 2024

시 배달 서비스(1편)

 

최부장님, 제가 오늘 40대 여자 고객분 만나기로 했는데 딱 맞는 시 한 수 추천해주세요.”

나는 이미 회사 안에선 시 배달부로 이름이 알려려진 지 오래였다.      


인터넷서점이 등장하면서 나는 종이책을 사 모으는 일이 일종의 작은 취미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하여 한번에 라면 한 박스 분량의 책을 수시로 모았다. 그 많은 분량의 책은 사무실의 영업장 뒤편에 자리한 공용 사물함에 차곡착고 쌓아 놓았다. 때론 이미 내가 소장하고 있는 도서목록에 있는 책을 다시 구입하는 해프닝도 가끔 있었다. 한곳의 인터넷 서점에선 구입한 이력이 있는지 여부를 체킹하는 기능이 있었지만 몇 군데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을 같이 거래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곤했다.  

    

내가 시 배달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 대상은 직장 동료 선후배이었고 사내메일을 이용했다. 사내 메신져 수신대상을 내가 임의로 정회원특별회원으로 그룹핑하였다. 이 기준은 회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의 차이가 아니었다. 남직원과 여직원 그룹으로 나눈 것 뿐이었다. 공식적으로 제도권의 출판물에 이미 이름을 올린 시였지만 조금 예민한 작품을 모든 회원들에게 보낸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혹시나 미투라는 영역에 엮일 가능성을 피하고자 했다. 그래서 남직원은 정회원, 여직원은 특별회원으로 나누었다.   

   

이후 스마튼폰의 등장은 내게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카톡이나 메신져 등 파워풀한 도구를 활용할 수 있었다. 종래 일일이 워드작업을 해야했던 아날로그 방식에서 포털사이트의 블로그나 카페 또는 기사에서 손쉽게 내가 원하는 시를 골라내고 이를 편집 가공하여 배달하는 디지털방식으로 바뀐 것이었다.

     

종래 무차별하게 종이책 시집을 구입하던 패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수시로 소통을 하는 선배처럼 꼭 소장의 가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종이책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습관을 나도 고려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1,000여권을 훌쩍 넘어서는 종이책 시집장서를 보유 중이란 것은 이 시배달서비스 작업에 여전히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 가족에 합류를 하고 검색 편집 전달하는 능력이 일취월장하였음에도 이 서비스작업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블로그나 카페 기사에 흩어져 있는 시 중 내가 원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시만을 골라내는 기준을 정하는 것도 작지 않은 고민거리였다. 이를테면 너무 올드하게 보이거나 이른바 MZ세대만이 선호할만한 시 중 취사선택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골라내는 데도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 요즘은 우리 학창시절과 달리 이른바 국정교과서가 아니다보니 교과서에 올라있는 작가와 시의 유형이 매우 다양해졌음에 나는 놀랐다. 예전에 교과서엔 이른바 관제 성격이 짙은 계몽적인 작품들이 주류였다. 이를테면 작위적으로 애국을 강요하거나 효심을 일으키는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이 시대는 이미 옛일이 되었다. 지금은 당시 이른바 재야 작가라 분류되던 시인들의 작품도 대거 교과서에 오르게 되었다.   

  

이는 단기간에  압축 비약적인 성장을 한 우리나라 위상에 걸맞게 변신한 것으로 보였다. 주제가 다양화해졌고 역동적으로 바뀐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반영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었다. 틀에 박힌 권선징악이나 일방적으로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효도를 강요하는듯한 스타일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검색실력이 차츰 쌓이다보니 시인의 수나 작품 수가 무진장하게 맣다는 현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재야의 고수 시인, 중견 시인은 물론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않은 좋은 작품들을 영접할 수 있는 작지 않은 기쁨도 덤으로 누리게 되었다. 이런 순기능이 생긴 반면 치명적인 골치덩어리가 새로이 등장했다. 최근 나는 이런 일에만 종일 매달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이유이다. @@자격시험 공부에 매진해야하고 때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하는 형편이다.  

    

시험공부’, ‘글쓰기 작업’, ‘시배달서비스3가지 영역을 적절히 배분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이 셋 중 한가지만을 하루종일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어렵기도 하고 바람지하지도 않다.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게 되면 오히려 싫증이 나고 능률도 오르지 않을 것임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배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도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내게 가장 시급하고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곳은 당연히 시험공부이다. 그래서 우선 시험공부를 이어가다 지치거나 능률이 오르지 않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글을 쓰거나 시배달서비스를 끼워넣기로 한 것이 내개 애초 짜 놓은 굳건한 틀임은 분명하다.

     

이럼에도 나는 시배달서비스를 별 탈이 없이 해내야한다는 일종의 작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 회원들에게 하루도 빠짐 없이 배달하고자 하는 시인과 시를 골라 내고 편집하고 저장해 놓아야 개운하다. 이는 시험공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 강의 출석률 100%를 이어가는 일만큼이나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인 볼일이나 경조사 등에 참석해야하는 일정이 있음에도 인강수강처럼 시배달서비스를 중단하지 않기로 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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