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아, 우리가 학교 들어올 때 치른 본고사 시험 생각나지? 그때 국어 문제 중 ‘이심전심(以心傳心)’에 해당하는 우리말 속담을 적으라는 것에 무어라고 답했는지 기억이 있어? 나는 그것 때문에 만점을 놓쳤어.”
“그것, ’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 아니면 ‘기둥을 치면 들보가 운다.’ 이런 것 아니었을까?”
당시엔 대학에 들어서기 위해선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에 이어 학교별로 치르는 국영수 등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나는 이 세 과목 중 상대적으로 수학이 취학과목이었다. 그래서 이 부족분을 영어와 국어에서 만회해야 했다. 이 중 특히 국어는 내가 가장 좋아했고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전략과목으로 정했고 고득점을 노리고 있었다. 최고목표는 감히 만점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예비고사를 마친 수험생을 대상으로 굴지의 대입 전문 대형학원에선 본고사 과목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이른바 ‘파이널코스’라는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대세였다. 나도 역시 @@학원 파이널코스반에 이미 등록을 마쳤다.
당시 웬만한 대학의 본고사 국어시험 문제엔 10점 만점의 작문 문항이 단골로 등장했다. 그래서 우리 반을 담당한 강사는 이 작문 문제 출제에 대비하여 별도의 특강시간을 마련했다. 작문 문제의 학교별 출제 경향부터 글을 쓰는 요령, 주의할 점 등에 관해 열강을 이어갔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수험생이 무슨 이름 있는 기성 작가인양 명문을 쓰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국어강사가 이런 말을 입밖에 내다니,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승전결등 단락을 적절히 나누고 문체가 탄탄해야 하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글을 써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뛰어난 콘텐츠가 담긴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강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 대신 출제 교수는 10점 만점에서 항목별로 점수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채점을 할 것이니 기본적으로 맞춤법을 꼭 잘 지켜야 한다고 일렀다. 그 한 예로 띄어쓰기를 들었다. 수험생은 자신이 최소한 띄어쓰기 정도는 제대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출제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팁도 귀띔했다. 원고지의 각 행마다 마지막 칸에 글자나 부호를 채우고 그다음엔 띄워야 할 경우엔 바뀐 행의 첫 칸을 채우되 이미 채운 행의 마지막 칸 우측 상단에 체크(V) 표시를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자 탈자가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라 했다.
그다음은 괜스레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뽐내는 자세를 버릴 것을 요구했다. 중학교 2학년 생이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말로 쓰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엔 논리적인 비약이 없는 물 흐르는 듯이 자연스러운 글이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어치피 콘텐츠 우열을 따지는 내용면에선 만점을 받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형식을 평가받는 부문에서 감점 요인을 최대한 줄이라는 것이 특강의 요지였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이 국어 강사의 특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글쓰기 특히 시험용 작문의 요령에 관한 정석을 설파한 것으로 보였다. 수험용이 아닌 일반 글쓰기에도 이 노우하우는 그대로 타당하다는 것이 내 생각임에 변함이 없다.
이 국어시험에선 만점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있었다. 4지선다형은 물론 단답형을 포함한 주관식문항 답안지란을 빈 공란으로 남기지 않고 모두 채우는 것이었다. 드디어 시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린 후 나는 문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선 재빠르게 스크린 했다.순간,이 국어 만점 받기 전략을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했다. 우선 10점이 배정된 작문 문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작문이란 것이 형식적인 부문과 내용적인 두부문으로 나눌 수 있었다. 띄어쓰기 철자법 등 맞춤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용을 이르는 콘텐츠면에서 만점을 받아내기란 애초 어려울 듯했다.이러니 내가 세운 목표점수를 하향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문 문제의 출현으로 당혹스러워진 나는 내 목표점수를 만점에서 4점 차감한 96점으로 하향하기로 했다. 어차피 글 내용에서 만점을 받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형식적인 부문에서 감점을 최소화하면 10점 중 6점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