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심전심’에 해당되는 우리말 속담을 적으라는 문제에 꽉 막혀버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도 우리말 속담을 찾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기껏해야 ‘염화미소’, ‘염화시중’, ‘불립분자’ ‘교외별전’이란 용어가 떠올랐지만 이 모두 한자로 된 사자성어에 불과했다.절대로 정답이 될 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당해 문제의 답안지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나는 교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비록 국어 과목에서 만점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4년간의 캠퍼스 생활은 물론 그 이후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 속담 문제의 정답을 속시원히 알아낼 수 없었다. 항상 개운치가 못했다. 당시 대학별 본고사의 정답은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내가 캠퍼스에 들어선 지 어언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인터넷서점의 등장 시기에 발맞추어 나는 내 관심분야 관련하여 종이책으로 세상에 나온 시집, 고사성어 사전, 속담사전 등을 주어 담고 있었다. 내가 손에 넣은 엄청난 양의 도서 중 예전 할아버지들이 즐겨 베었던 두터운 목침 두께가 연상되는 우리말 속담 사전을 뒤적여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치렀던 대학입시 본고사 국어 시점 문제 중 한글 속담 문제의 정답을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척하면 삼천리”를 최종 정답으로 마루리 짓기로 했다. 이도 엄밀히 말하자면 삼천리란 단어는 순우리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출제자의 의도를 우리말 속담을 찾아내는 것으로 줄여보면 가장 근접한 정답으로 확정해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속담의 모든 용어가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으로 해석한 결과였다.
당시 대학 입학 본고사 국어시험을 준비하던 나는 이런 속담을 고교 은사나 학원강사에게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통틀어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본고사 국어시험에서 만점자가 나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출제 교수가 킬러 문항 하나를 불쑥 끼워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했다. 이 문제가 없었더라도 어차피 10점 만점인 작문 문제 때문에 만점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출제자가 이런 킬러문항을 배치한 데는 무슨 깊은 의도가 있었는지 아직도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는다.
내가 대학문을 들어서던 때는 사실상 신군부의 등장으로 권위주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말 속담 문제의 정답은 바로 다름이 아닌 “@씨 마음이 @씨의 마음”일 것이라고 전반 농반으로 던지는 친구도 주위에선 제법 찾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답안은 아니었다. 최소한 어느 정도 정답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 @ 2개의 성씨는 순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설령 이렇게 답안지를 메운 동기들이 있더라도 점수를 얻지 못했을 것은 뻔했다. 여기서 백보를 양보하여 성씨를 순우리말로 보아주더라도 출제교수가 이에 동그라미를 해주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서슬이 시퍼랬던 군사정권하에서 혹시나 자신의 신변에 닥칠지도 모르는 모종의 불이익까지 감수하고 이를 정답으로 정해 놓을 용기 있는 교수를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작금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메이저 입시전문학원 등 일타강사가 가르친다는 이른바 킬러문항의 효시를 우리 동기들은 일찍이 구경한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