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다 보니 간단한 접촉사고가 났네. 반대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이쪽 서부주차장으로 진입하려다 후진하던 중이었어. 바로 뒤 쪽에 따라붙었던 승용차와 살짝 부딪혔어.” “그럼, 이제 우리가 그쪽으로 갈 테니 기다리게.”
형오는 나와 초등학교 51회 졸업동기생이다. 오랜 세월 동안 고향동창회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한 번도 소통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번엔 나와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다. 우리 여자동기 수빈이의 여동생과 형오의 부인이 중학교 동기인 사실이 밝혀진 덕분에 우리는 일단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리 고향 동기모임인 재경, 전체 모임을 번갈아가며 3번이나 총무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형오는 초등학교 친구들 중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입밖에 내며 조만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으로 답답하네, 굳이 그렇게 돌아갈 필요가 있어? 나한테 직접 연락처를 주면 될 것인데...”
이래서 반세기를 넘어서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2월 중순 경에 우리는 일단 회동하기로 했다. 형오와 윤주와 나는 교통이 비교적 편리한 대전으로 만나는 곳을 정했다. 나는 최근 부득이하게 ‘극한 직업’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1박 2일간의 휴가를 얻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선 당일치기 모임이라도 갖기로 쉽게 뜻을 모았다. 대전역 인근의 찻집에서 만난 다음 내 고향 본가로 이동하여 그동안의 회포를 푼 다음 다시 대전으로 복귀하여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았다.
이 자리엔 대전에 살고 있는 춘호와 같은 부락의 여자 동기 윤주도 동참하기로 했다. 윤주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만나기는커녕 그간 소식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은 형오와 별 다름이 없었다. 나는 이런 동기 3자간 역사적엔 해후 약속을 다른 친구들에게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우리의 약속일은 주말이 아닌 평일 낮 시간대로 잡혀 있었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니 이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 춘호는 대전역 인근의 커피숍 모임엔 동참할 수 있다는 기별을 해왔다.
나는 당일 근무지에서 약속장소까지 거리와 주행시간을 가늠해 본 후 출발 시각을 이에 맞게 조정했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퇴근 후 공중목욕탕에 들르는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엄청나게 어려운 방정식도 아닌 이 단순한 뺄셈과 덧셈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약속 시간에 제대로 맞추지 못할 것이 뻔해졌다. 게다가 평일임에도 고속도로는 중간중간 약간의 정체를 반복했다. 적어도 1시간 이상이나 늦어질 것 같았다. 이러니 나는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좀 다행스러운 일이 생겼다. 1시간여나 형오와 윤주를 기다리게 할 나의 죄책감을 다소 덜어준 구세주가 등장했다. 그 주인은 다른 이가 아닌 춘호이었다.춘호는 오늘 오후부터 저녁까지 스케줄 때문에 이 3자 모임에 줄곧 참석할 수는 없었다.
춘호가 우선 형오와 윤주를 만나 그간 살아온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나는 모임에 지각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다소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시간을 벌은 기분이었다. 경제학개론 책에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외부 경제 효과’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둘렀다. 부랴부랴 드디어 대전역 인근 한쪽 주차장 자동 출입 차단기 앞에 섰다. 그런데 이쪽은 우리 약속장소인 서부 주차장이 아니라 반대편 쪽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이는 인근 보행자에게 들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급히 반대쪽 주차장으로 돌아서기 위해 후진하기로 했다. 아뿔싸,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른 시각에 51년 만에 친구들 만나기 위해 승용차 백미러를 보고 고개를 우측으로 돌려 후방을 살폈었야 하나 이런 절차를 생략해 버렸다.결코 사소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바쁠수록 주의를 하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쪽 동부 주차장에 들어서기 위해 내 애마 바로 뒤쪽에 바짝 대기 중이던 승용차의 앞부분과 꼼짝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후진이다 보니 불행 중 다행히도 그 충돌의 강도는 미미했다. 이런 경우 후진 중 뒷 차를 받았고 후방주시 주의 의무를 게을리했으니 내가 과실률 100%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뜻하지 않은 접촉사고를 뒤로하고 나는 형오 윤주 이렇게 셋이서 내 고향 본가 단층 슬래브 단독 주택에 짐을 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반세기를 꽉 채운 후 다른 반세기가 이미 다시 시작된 지금에서야 서로 가까이서 얼굴을 맞대었다. 오래전 상고머리 소년 둘과 단발머리 소녀 한 명은 인생의 갖은 풍상을 겪은 이제 ‘어르신 대열’에 들어섰다. 세월의 무상함을 일러 무엇할까. 우리 모두는 그저 살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왔음이 쉽게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