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의 일이었다. 나는 고향친구 병주와 읍내 가성비가 좋은 시골식당애 들러 김치찌개로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웠다. 그런 다음 오랜 기간 내가 차지하고 있는 단골 주차구역에 내 애마를 세우던 순간이었다.
일면식이 없는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분이 내게 불쑥 다가왔다.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어서 나의 서재로 복귀하여 일상을 이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인터넷강의를 마저 듣고자 했다.
우리 고향 사투리로 '고딩이, 올갱이, 올뱅이’라 불리는 용어 대신 ‘다슬기’라는 표준말을 꺼내는 점이나 억양 엑센트 등을 살필 때 외지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다슬기 조달처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약 2년 전 인근 도시 대전에서 이곳으로 귀촌하여 어업허가를 받아 다슬기 채취와 판매를 생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곳이었다. 영국사 가는길 인근 지럭골에 자리잡은 곳을 먼저 연결했다.
내가 우리 고향 특산물인 다슬기를 평소에 찾는 단골 조달처는 세 군데 정도였다. 고향 동기 친동생이 꾸려가는 이름난 어죽집에다 또 다른 동기 친동생이 자리잡고 있는 말그리는 오래전부터 단골이었다. 이에 최근 이 지럭골은 다른 친구의 소개로 새로운 조달처로 합류하였다.
이 거래처는 약 열흘 전, 살아 있는 싱싱한 다슬기를 구한 인연이 있기도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직접 요리를 해 며칠간의 국거리 걱정을 덜기도 했다. 제일 나중에 거래를 튼 곳이지만 내가 이곳을 먼저 찾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난 겨울엔 다슬기액기스를 구하여 선물용으로 활용한 이력이 있었다. 게다가 강건너에 본가를 둔 내 고향 친구가 이 거래처 주인장의 귀촌에 많은 도움을 준 곳이기도 했다. 또한 이곳을 거래한 친구들의 물건의 품질에 관해 호평이 잇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슬기 씨알이 제법 굵었고 푸짐한 덤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래서 ‘조달처의 다각화’가 이루어진 샘이었다.
“오늘은 이미 준비한 물량이 다 동이 났어요. 오늘 예약을 하면 내일에나 가능합니다.”란 답변이 돌아왔다.
혹시나 했는데 내 예상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평소 이곳은 미리 예약받은 물량을 조달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지난 번전해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여기서 한 번 더 고민을 해야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 정도에서 오늘은 다슬기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현직 당시와 달리 이 분이 내게 영업상 실적에 별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다슬기를 얼마나 손에 넣고 싶은면 일면식이 없는 내게까지 부탁하고 나섰으니 그 간절함이 가히 짐작 못할 바가 아니었다. 비록 영업실적이 필요한 현직을 떠났지만 이 분의 간절한 부탁을 여기서 팽기치는 일은 좀 매정하다 싶었다.
말그리 후배에게 한 번 더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 어기 계신데요? 제가 그 정도 팔자고 농사일 팽개치고 집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지금 수박밭에 나와 있어요. 선배님, 저희 집 위치를 잘 아시지요? 창고문이 열려 있어요. 그 손님들 직접 모시고 가셔서 저울에 올려 달아서 포장지에 담아 드리세요. 현금은 한쪽 귀퉁이에 꼬불쳐 놓으시면 될 것 같은데...”
내가 저쪽 일행에게 특별히 어떤 신세를 진적이 있거나 조그만 이해관계도 없는 마당에 말그리 후배가 제안한 수고를 반드시 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이왕 나선김에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싶어졌다.
“나도 따라 가줄까?”
저쪽은 알행은 모두 4명이었다. 나와는 일면식이 없는 생면부지의 사이였으니 나 혼자서 오로지 이 미션을 진행하기엔 약간 켕기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이래서 친구 병주를 조수석에 앉히고 우리는 선도차를 자처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저쪽 일행은 커브가 심한 초행길을 조심스럽게 운행하며 우리 뒤를 따라 나섰다.
“이쪽 코스는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 확실히 알고 있는 거지?”
병주가 방금 내게 제안한 경로는 평소 내가 자주 이용하는 코스와는 전혀 달랐다. 이경로는 내 단골 주행길에 비해 더욱 꼬불꼬불했고 주행시간이 좀 더 필요한 우회도로였다. 그럼에도 내 옆자리를 병주가 지키고 있었으니 그 정도 불편이야 감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