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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28. 2024

초등학생용 일기장을 찾던 날(2편 완)

                           

우리 두 일행은 약 15분여의 시간이 걸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많지 않은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막다른 골목의 끄트머리 부분에서 20여 발자국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나는 지신있게 달려들었다. 다슬기 저장고의 양쪽 레일 위를 오가는 육중한 미서기 출입문을 호기롭게 힘껏 밀어젖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내가 찾고 있는 농가가 아니었다. 후배 다슬기 저장고의 규모와 외형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의 농가에 무단으로 돌진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저장고의 외형등이 닮음꼴이라는 것은 결국 핑계에 불과했다. 종래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매번 번지수를 잘 뭇 찾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름난 길치의 진면목이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들어나던 순간이었다. 후배의 다슬기 저장고는 한 블럭 위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후배가 내게 이른대로 다슬기를 대행 판매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와 장비는 내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6만원어치가 필요하시다고 했지요?”

아니, 조금 더 가져가고싶은데요. 8만원어치 담아주세요.”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져 꼬깃꼬깃한 오천원권과 천원권 종이돈을 닥닥 긁어모아 네게 내밀었다.  나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산기 어플의 도움까지 받아 정확히 6.6키로그램 분량의 다슬기를 검은 비닐 봉지에 차근차근 담아가던 중이었다.  

   

조금 더 담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제 5.8키로그램입니다.”
 사장님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가늠을 하시나요?”

우린 이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이 일행 중 한 분은 양쪽 눈 자체가 정교한 전자식저울에 다름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아르는 눈대중이 아닌 성능이 뛰어난 정교한 저울이었다. 건설, 토목현장 등에서 잔뼈가 굵은 거로 보였다. 일행 중 한 분은 얼굴을 화장품이 아닌 허연색 밀가루로 얇게 분장한 듯 했다. 방금 전까지 생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노동을 마무리한듯했다.  

              

모종삽과 유사한 길쭉한 모양의 금속성 주걱으로 다슬기를 조금씩 덜어내 봉투에 담아가던 중이었다. 나는 이 다슬기 저장고의 주인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덤을 더 퍼 담을 수가 없었다. 이른바 무상위임계약'이지만 자기 재산에 관한 동일한 주의를 넘어선 선량한 주의 의무를 다 해야 했다.     

 

이 곳 주인장 연락처 좀 부탁드립니다.”

우리 고향에 휴가 오신건가요?”

“23일간 몇 군데 들르고 이제 돌아가는 중입니다.”
 일행의 생활근거지는 각각 서울 인천 대전 등이고 같은 공사장에서 만난지 오랜  인연이라 내게 일렀다.

     

나는 오늘 내 고향 이곳에서 오래 몸에 베인 금융영업인의 뿌리깊은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들켜버렸다. 퇴직 후 주소와 휴대폰번호 이멜주소 등이 적힌 새로이 마련한 명함을 일행 모두에게 순식간에 배포를 마쳤다. 다슬기의 대행 판매는 이렇게 해서 마무리했다. 막다른 골목이라서 후진하는 일행의 차량의 방향을 안내하는 마지막 작은 미션까지 마쳤다.


사장님, 너무 친절하십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니 나중엔 꼭 복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의 주행길에 올라섰다.

저 양반들 아까 거기 저장고 쪽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 같은데...?”

에이, 그럴 리가 있어, 저장고 사방을 감시하는 CCTV도 보이던데.”


우리는 그 일행이 우리와 반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비단강 지류를 가로지르는 뛰어난 디자인과 위용을 자랑하는 웅장한 교량으로 들어섰다.

     

이제껏 나는 오늘처럼 누군가로부터 복 받을 것이라는 작은 칭찬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준수 친구, 오늘 착한 일 한 가지 해냈네 그려.”


초등생 시절 일일 일선이란 슬로건이 떠올랐다.‘하루에 한 가지 착한 일을 하자는 계몽성이 짙은 일종의 관제성 지침이기도 했다. 초등학생용 일기장을 어디에서 구해 오늘 마무리한 착한 일을 네모난 칸에 빼곡이 적어넣고 싶어졌다. 우리가 초등시절을 마무리한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등장했다.‘ 참 잘했어요란 문구가 새겨진 둥근 고무인이 그것이었다. 이 고무인  대신 담임선생님의 육필로 적힌 칭찬 한 마디를 읽고 싶은 욕심마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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