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지난번과 다르네, 이유가 있나, 생선조림도 없고 돼지고기는 아예 비계가 없는 것이었는데...” 나는 고향 동기 3명과 도합 4명이 토요일 만찬 약속을 잡는데 천신만고 끝에 성공했다. 장소는 내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찜한 곳으로 정했다. 매달 한번씩 얼굴을 맞대는 고교동기 수다모임 점심식사를 했던 곳으로 이미 점지한 이유가 분명히 따로 있었다. 대전시내 구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회관이었다. 한정식전문집이었다.
우리 고향 동기 모두는 이미 현역애서 은퇴를 한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 일정을 맞추어 저녁식사 한끼를 나누는 데는 적지 않은 애로가 있었다. 은퇴 후에도 각자 밥벌이를 위해 생업을 계속 이어가야하니 이 자리를 마련하는데 무려 보름여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오랜 세월 직장생활을 한 덕분에 여러계층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했고 외식기회가 유달리 많었다. 게다가 새벽형 인간이었으니 하루 세 끼 식사 모두를 집밖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교동기 수다모임을 약 한달여전에 이곳에 가진 적이 있었다. 순번을 정해 주최자가 음식점을 정해 즐거운 시간을 갖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공무원생활을 정년으로 마감한 친구가 이 음식점을 잡았다.
내가 이런 가격대에 이렇게 만족스런 식사를 즐기기는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요즘은 시골 농촌의 허름한 식당을 찾더라도 가정식백반은 10,000원대가 기본이었다. 바야흐로 고물가 사대가 도래했고 특히 음식점 물가는 상승분이 특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허름한 시골식당의 가정식백반 1.5배밖에 되지 않은 가격으로 이런 식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매우 만족했다. 그야말로 수지맞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큰 보물단지를 거저 얻은 ‘대박’을 맞은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
이곳은 철저하게 사전 예약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12첩반장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선 귀리를 섞어 갓 지어낸 밥이 인상적이었다. 보온밥통에서 고이 보관되었던 밥을 꺼내 올리는 방식이 전혀 아니었다. 씨래기된장국, 비계를 모두 떼어낸 황금빛 물감을 머금은 듯한 돼지고기 수육, 토종닭 백숙의 한 모퉁이를 떼어낸 순살 닭고기 더미, 고등어조림, 삶아낸 무채나물, 마른명태채 무침, 배추김치, 참나물 무침 등으로 4인용식탁을 옹골지게 채워냈다.
나는 이곳에서 고교동기 수다모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가까운 시일내에 누구든지 이곳에 헤쳐모여 식사를 같이 하고싶다는 생각이 종교 교리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이 곳의 첫 초대손님이 된 것이었다. 고교동기 모임 뒤 이곳 음식점을 적극 홍보하고 다니는 영업상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딱 내 스타일에 맞는 상차림이었고 다른 지인들에게도 기회가되면는 대접하고싶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드디어 기다리던 약속 날이 돌아왔다. 대전은 우리고향에서 무려 60여 키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예약시간 맞추어 경유지별 소요시간등을 치밀하게 가늠하여 정했다. 먼저 고향 본가에서 친구 문호를 내 애마 조수석에 앉히고 행선지의 첫 여정 길에 올랐다. 나머지 동기 둘은 대전 시내에 자리한 각각의 자택과 일자리를 찾아 픽업하기로 했고 최종목적지인 @@회관에 도착하기로 세부 일정을 용의주도하게 마련했다.
이동 거리와 시간, 만약에 있을 교통정체 등을 감안하여 넉넉히 여유룰 두고 서두른 덕분에 최종 목적지인 한정식 식당에 드디어 ‘슬라이딩세입’에 성공했다. 예약자와 시간을 확인한 후 우리는 3호실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약 한 달전 고교동기 수다모임을 가졌던 방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예기치않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번과 같은 방에 들어섰지만 상 차림의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다. 적지않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수다회 모임 때와 전연 딴판이었다. 이런저런 장점을 들추어가며 만나는 주위 사람 모두에게 요란스럽게 자랑을 늘어놓은 나로선 정말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