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반찬 메뉴 중 고등어조림은 아예 식탁 위에 오르지 않았고 나머지 다른 반찬의 콘텐츠와 양이 성에 차지않았다. 게다가 전에는 무척이나 친절한 응대를 보여주었던 종업원의 태도는 180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돌변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나름 차근차근 따져보기로 했다. 먼저 지난번은 평일 오찬이었다면 이번엔 주말 만찬이었다. 이곳은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았다. 영업을 하지 않는 다음날을 위해 기존 반찬은 물론 재료 등을 모두 소진시켜버려야 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내 고교동기는 이곳을 드나든지 아주 오래인 찐 단골 고객이었고 나는 이곳에서 아직 알아보지 못하는 그렇고 그런 손님에 불과하기 때문이란 것도 한가지 이유로 짐작할 수 있었다.
매우 답답해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이유를 직접 종업원에개 캐묻기로 했다. 평일오찬과 주말오찬이 음식값과 차림 콘텐츠가 차이가 있는지부터 물었다. 달리 취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러다보니 지나번에 나는 무엇엔가 홀려 헛것을 보는 착시현상을 겪은 것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우리 일행 중 한 친구가' 마른 명태 무침'이 금새 바닥을 드러내자 혹시 리필이 가능하냐고 물음에 어렵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대신 '삶아낸 무채무침'을 채워주었다. 요즈음 같은 고물가 시대에 명태는 더욱 비싸기 때문이라고 자체분석하는 걸로 마무리지었다.
내가 찾던 고등어조림은 나중에서야 식탁에 올랐다. 공기밥은 여러 가지 반찬이 거의 모두 소진된 다음에야 준비되었다. 심지어 시래기된장국은 간이 너무 강했다. 하나의 불만이 더 쌓였다. 결국 반찬의 콘텐츠는 물론 양도 모두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지경이니 거의 보름에 걸친 나의 친구들에대한 이 음식점의 자랑이 허풍이거나 거짓으로 판명되는 것인가 하는 우려가 엄습했다. 조그만 자괴감마저 들었다. 내 생일턱이라는 이름을 달아 고향 친구들에게 실속있고 넉넉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하자고 한 나의 야침찬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특정 반찬의 리필이 불가하다는 종업원의 대꾸에 이 음식점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은 아니라는 친구의 혹평도 잇달았다.
종업원들은 완강한 답변과 달리 평일 오찬과 주말 만찬 사이엔 많은 간극이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지난번 고교 수다회 모암땐 빈 좌석을 찾을 수 없을만큼 손님이 북적거렸지만 오늘 저녁엔 우리 팀만이 식탁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밝혀졌다.
그럼에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평소 식사량이 그리 많지 않았던 친구 진우는 자신에게 할당된 공기밥을 모두 비우고 다른 친구가 남긴 몫까지 해결하는 이례적인 풍경을 보여주었다.
오늘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내가 외지인에게 오지게 베풀었던 ‘다슬기 대행판매’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일일 일선’에 더하여 같은 날 ‘착한일’ 하나를 더 보태려던 무모한 내 바람은 보기좋게 무너졌다.
“아니야. 괜찮았어. 어제 식사 맛있게 잘 했어.”란 메시지도 다음날엔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식당을 제대로 고르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내게 결코 겉치레 인사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다소 위안이 되었다.
이른바 ‘착한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해보고자하는 것은 그 달성이 매우 어려운 욕심임이 밝혀졌다. 매일 한가지씩이라도 꾸준히 ‘착한 일’ 실적을 쌓아가는 것이 녹록치않지만 꾸준히 노력한는 것은 분명 값어치가 있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단기간 몰아서 당일치기나 초치기로 하는 것보단 꾸준히 평균잔고를 늘려가는 몸에 베인 행동이 바람직함은 물론이었다.
착한 일을 할때마다 초등학생용 일기장을 찾는 대신 이렇게 수시로 앱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무릇 세상엔 착시현상이란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번 @@회관 고향친구 만찬건에는 내 착시에 더해 실제 차이가 더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다음 기회에 평일 오찬을 위해 이곳을 한번 더 찾고싶어졌다. 내가 현상을 보는 시야가 잘못되었느지 아니면 이 식당에서 내 착시현상을 유도했는지 여부를 다시 한번 검증하는 것은 꼭 필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