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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30. 2024

노숙자는 아무나 되나(2편 완)

                         

병준이는 평소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은 6척 장신에다 0.1톤의 몸무게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흔치 않은 캐릭터였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면시간이었다. 병준이는 새벽 4시 전후로 부스스 잠에 깨어 눈을 비비며 아파트 출입문을 혼자 나서고자 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새벽에도 편도 4차선 포장도로를 육중한 장갑차가 질주하는듯한 굉음을 자랑하며 여전히 코를 골고 있었다. 그래서 병준이를 배웅할 생각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병준이는 아파트 출입문을 조작하는데 서툴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밖으로 나오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이른 새벽시각이다 보니 교통정체는 다른 동네 남의 일이었다. 병준이는 쉽게 택시에 올랐다. 전날 폭음에다 수면부족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택시기사 대각선 뒤쪽의 좌석에  엉덩이를 올렸. 이어 상체를 쿠션좋은 뒷좌석에 밀착시킴에 동시에 코를 골며 깊은 꿈나라 여행의 장도에 올랐다. 이런 와중에도 행선지가 서울역이란 것을 기사에게 알리는 정신력은 가상했다.     

 

얼마간 주행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뒷좌석의 손님이 인사불성이 된 상황을 기사가 놓칠리는 만무했다. 드디어 이 기사에겐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미 숙면궤도의 한가운데 진입했다는 것을 완벽하게 확인한 기사는 번개작전에 즉시 착수했다.     


우선 우측 바깥 차선의 여유 공간에 차량을 부드럽게 세웠다. 기사의 움직임은 전광석화에 다름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미션을 마무리해야 했다. 우선 병준이의 휴대폰을 챙긴 후 뒷주머니의 장지갑도 낚아챘다. 그런 다음 사각팬티 한 장만을 남겨두고 양복 상 하의 넥타이 등을 모두 무장해제시켰다. 모든 노획품은 조수석으로 몰아 옮겨놓았다.      


그런 후였다. 다시 얼마간 주행하여 이 기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에 진입하기 전 10미터 정도 구역에 차를 세웠다. 뒤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병준이를 조심스럽게 밀어 아스팔트 바닥에 내팽개쳤다.    

  

드디어 큰 것 한 건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기사는 묘한 웃음을 만면에 띄우며 엑셀을 힘껏 밟았다. 문제의 현장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멀리멀리 달아났다. 작전을 완료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런 엄청난 일을 당한 줄도 모르던 병준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누운 채 순간 한기를 느끼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보았자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다.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에 사각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알몸으로 무자비하게 내팽겨진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늦게서야 알아차렸다.

     

아이고 추워라, 이게 무슨 꼴이지, 아니 미치겠네 창피하기도 하고. 성모야 나 큰일 났어. 지금 서울역인데 휴대폰 지갑 모두 다 털렸어. 당장 이쪽으로 올 수 있어? 옷도 다 벗겨졌어. 아이고 추워라...”
 우리는 이제 벌써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안성을 지나고 있는데, 기수를 돌려 서울역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고, 그럼 내가 휴대폰 번호 줄 테니 철진이에게 도와달라고 해보아라. 그쪽으로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어쩌다가 그런 황당한 일을 당했어?”  

   

이런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들은 철진이는 오랫동안 장롱 속에 잠자고 있던 여분의 옅은 초록색 운동복을 챙겨 눈썹을 휘날리며 문제의 서울역 현장에 나타났다. 이번 해프닝의 주인공인 병준이와 어젯밤 친구들에게 주연을 베풀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철진이는 키와 몸무게 등 체격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사이즈가 턱없이 모자라는  철진이의 운동복을 억지로 자신의 몸에 끼워 넣은 병준이의 행색은 가히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 노숙자야  요즘도 양주 많이 마시지? 시바스리갈도  여전히 좋아한다며?”

 에이, 또 그 이야기야 언제 적 일인데...”
이 세기적인 참사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은 고향친구들 모두는 병준이를 어엿한 노숙자로 부르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무릇 노숙자는 아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한 발짝을 잘못 내디뎌 삐끗하는 순간 병준이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병준이처럼 나락으로 떨어져 노숙자에 데뷔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서울은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다’ 우리 부모세대의 경구가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6척 장신에다 0.1톤의 체중을 자랑하는 멀쩡한 40대 초반 아저씨가 사각팬티 한 장 만 달랑 걸친 알몸이었다. 새벽 찬공기에 아래위의 치아를 심하게 부딪히며 전화요금을 구걸하던 장면은 아주 감상하기 어려운 명품 동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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