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Jul 21. 2024

진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

  

제가 원하던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자 어머니는 몹시 실망했고 너무나도 슬피 우셨습니다.”

저는 청와대 수석비선관으로 근무한 이력도 있습니다.”

이번 신입사원은 매우 우수한 인력들을 뽑았습니다. 사장인 저로선 매우 기쁩니다.”     


3주간으로 예정된 신입사원 연수프로그램도 이제 벌써 반환점을 돌아서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연수원을 번듯한 자체 사옥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최신식 건물이었다. 게다가 당시로선 구경이 쉽지 않았던 생수통을 곳곳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아마 재무구조가 매우 좋은 곳에 들어온 것 같다고 입사동기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했다.   

   

오늘은 사장의 특강 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은근히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우리는 사장이 회사의 향후 전망이나 비전 등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연수생 동기들에게 애사심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연설을 하리라 기대하였으니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자신의 학창 시절 이력이나 고위공직자에 올랐던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연설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직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기엔 많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급여나 복리후생 등에서 우리 회사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습니다. 이점, 여러분 앞에서 자신 있게 약속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입사 전형에선 일부 국립 S대 출신도 제가 뽑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스펙등을 자랑하고 조직의 인화단결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은 필기시험등에서 합격선을 넘더라고 최종 선발에서 제외했습니다. 이와 달리 자신이 좀 부족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만 조직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제가 선발했습니다.      

모름지기 자신이 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혼신의 힘을 다해 조직 발전에 기여할 수 있고  회사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제 사장의 특강에 이어 2주 차 토요일인 오늘은 부사장의 특강이 있었다. 세칭 1호차의 특강과 2호차의 그것을 견주어 보았다. 양자 사이엔 아주 확연한 차이가 있었음을 우리 동기들 모두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2호차의 특강은 1호차의 그것에 비해 자신감은 넘쳐났고 비교불가의 역대급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이번 회사의 새로운 식구가 된 신입사원들에게 자신감과 비전을 제시했고 자신이 회사의 발전을 위해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해낼 각오를 보여주었다. 이에 더하여 2호차는 자신이 바라는 바람직한 직장인은 어떠해야 하는 가에 관해 연수생들에게 자연스럽게 털어놓는 기회로 활용했다.      

이러다 보니 연예인 오디션을 방불케 했던 이번 입사전형 중 일반논문 시험 문제가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 떠올랐다.

     

‘3저 시대에 우리나라가 대처해야 하는 경제 운용방향바람직한 직장인상의 두 문제 중 하나를 골라 답안지를 채우는 문제였다.      

나는 이 중 두 번째 문항을 택했고 답안지를 부지런히 메꾸어나갔다. 개인의 입장만을 결코 고집하지 않겠다. 조직의 발전과 인화단결에 기여할 수 있는 직원이 되고자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업무에도 열심히 정진하여 이른바 전문가바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등 그 요지를 중심으로 나름 논리를 갖추어 써 내려갔다.    

  

그런데 오늘 2호차의 특강을 주의 깊게 경청한 후 나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호차가 특강에서 요구했던 바람직한 직장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의 골자와 내가 신입사원 전형 일반 논문 답안지에 적었던 그것의 대부분이 딱 들어맞았다는 일이 벌어졌다.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번 취업 오디션에서 최종선발된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 논문시험애서 고득점을 한 것이 내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1등 공신이었음에 밝혀진 것이었다.

     

이번 신입사원 연수 초기부터 떠돌던 소문이 하나 있었다. 우리 회사 2호차는 이른바 작업군인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어느덧 공지의 사실이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렇게 논리 정연하고 자신 있게 특강 시간을 채우는 노하우에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2호차는 사단장급인 이른바 별 두 개출신일 것이라는 것이 밖으로 내색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예상이었다. ‘두 개짜리계급장이라는 말이 돌았으니 이런 내 예상은 어느덧 확신으로 굳어졌다.  

        

신입사원 연수 일정의 마지막 날이 돌아왔다. 2호차의 전역 전 최종 계급에 대한 나의 예상이 한참이나 빗나간 사실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두 개’란 점에선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별 두 개’가 아닌 ‘갈고리 두 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장이 아닌 중사였던 것이었다.      

사단장급이 아니면 어떠랴, 이번 특강에서 연수생들에게 보여준 비전, 자신감, 희망, 카리스마 등을 살필 때 별 네 개2호차에겐 아깝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이고 훌륭한 연설을 할 능력은 결코 계급에 비례하지 않는다것이 눈앞에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덧 직장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당시 회사 노조와 협상 최고 파트너는 2호차였다. 협상 현장에서도 2호차는 그 특유의 설득력과 진정성, 추진력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협상 상대자 쌍방 간 주고받는 밀당의 귀재로서의 수완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깔끔하게 노사협상을 마무리했다.  

    

2호차는 그 후 지속적인 학구열을 불태웠다. 모 경영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주경야독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경영학박사라는 타이틀이 금박으로 박힌 명함을 수시로 내밀곤 했다.      

오늘 오후엔 아주 큰 행사가 있었다.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경제 경영학 전문가, 금융기관 CEO들이 한 자리에 모인 심포지엄 행사를 마쳤다. 이 자리엔 우리 회사 주관부서장과 실무 책임자들도 배석할 기회가 주어졌다. 행사는 거의 마무리단계를 향하고 있었다.    

  

어이, 한 대리, P(포트폴리오)가 무슨 뜻이지?”

명색이 경영학 박사인 2호차의 뜬금없는 질문이 불쑥 터져 나왔다. 이는 이 행사에 참석한 우리 회사 직원은 물론 다른 외부 참석자들 모두를 그야말로 일순간에 고꾸라지게만들어버리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회사 경영이나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어 그까짓 ‘포트 풀리오’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커다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내 생각엔 그 때나 자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음을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전공의 파업'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2편 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