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학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두 개 과목 검진과 외래진료를 같은 날 몰아서 보기로 했다.
초등시절 소풍전날 설레던 기억과는 또 그 결이 달랐다. 여전히 잔뜩 긴장이 되었다.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들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우선이었고 여기에 예약 시각에 늦지 않으려는 노력이 섞여 있었다. 검사를 위해선 6시간 이상 금식이 필요했고 톡으로 안내받은 일정이 뒤엉켜 있었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톡의 안내문자를 수기로 꼼꼼하게 메모해 가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가야 할 곳과 예약 시간을 다시 한번 더 점검해야 했다.
오전 11시 전후부터 오후 4시경까지 검진과 외래 진료가 각각 2번씩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중간 시간대에 차량을 이용한 외출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먼저 첫 번째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충분한 여유 시간을 두고 집을 나섰다. 예전 약 2년여간 살아본 적이 있었던 아파트 단지 상가를 먼저 찾기로 했다. 소문난 맛집의 대표 품목인 꼬마김밥을 점심식사로 미리 챙기고자 했다.
여기까지 스케줄은 무난하게 이어졌다. 집을 나서면서 먼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비게이션 화면 중 도착지로 @@대학병원을 가볍게 터치한 바 있었다. 내비게이션 브랜드 중 가장 신뢰도가 높고 평판이 좋다는 @맵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었다. 출발지에서 목적지를 이미 설정했고 김밥집까지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별일 없이 주행을 마쳤다.
김밥집에서 용무를 마친 나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내비게이션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여전히 최종목적지는 병원으로 세팅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의 경로 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예상한 바와 전혀 다른 경로로 안내를 이어가고 있었다.
구월동 김밥집을 출발하여 남동 IC로 들어섰고 제2, 3 경인고속도로를 거쳐 수원 광명 간 고속도로도 거친 후 강남순환고속도로로 진입을 마쳤다. 내가 강남 순환고속도로를 이용 시 평소 한 가지 징크스가 있었다. 관악 IC로 빠지라는 안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종종 놓쳐버리는 것이었다. 오늘은 지금까지 내가 예상한 주행거리를 훨씬 넘어서다 보니 이번엔 잔뜩 긴장하여 관악 IC로 제대로 들어섰다.
오늘은 그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이어진 유턴 안내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자 잠시 후엔 내 오른쪽 방향엔 @@대학교캠퍼스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병원이 오늘 내 최종목적지인데 내 애마는 @@대학교 쪽을 향하다니, 그래서 내비게이션의 최종목적지 선정을 다시 한번 살폈으나 이에 전혀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상도터널을 통과한 후 한강대교를 건너고 용산 삼각지, 광화문 대각선 건너편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았다.병원 정문까지 2킬로미터여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내가 주행을 마친 경로는 극심한 정체를 겪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앞이 뚫린 순탄한 주행은 아니었다. 병원 첫 일정으로 잡힌 초음파검사 일정엔 무난히 맞출 수 있으리라고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차선을 가득 매운 차량들은 꼼작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태까지 감안하여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지만 오늘도 여차하면 이제 검사 예정시각을 맞출 자신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빠듯한 병원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하려면 병원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음은 물론이었다.
더위를 먹은 내비게이션이 오늘따라 나를 놀리기로 작정하고 나선 것으로 보였다. 내 애마는 신차를 출시한 지 10여 년을 넘어서고 있었고 주행거리는 무려 30만 킬로미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현역으로 근무 중일 땐 영업상의 이유로 지금은 지방소재 고향을 수시로 오가는 덕분이었다. 연간 평균 주행거리는 보통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자가운전자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복이라지만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 병원 일정을 마치면 이 내비게이션 제작 관리사 관계자에게 그 사연을 따져 묻고 기계의 원천적인 오류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시스템의 오류인지를 밝히고 싶었다.
이즘 나는 ‘서울 투어버스’가 떠올랐다. 대형 2층 버스에 관광객을 가득 모시고 시내의 명소를 정해진 코스에 따라 경유하는 점에선 오늘 나의 주행과 별 다름이 없을 듯했다.다만 내 투어는 운전자겸 관광객이 혼자이었고 중간중간 하차하여 목적지를 관람하지 않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었다.
대망의 큰 뜻을 품은 채 괴나리봇짐을 싸들고 상경한 지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나는 서울 시내는 물론 외곽 지리에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초복을 맞아 약식으로 본의 아니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관광드라이브를 즐긴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