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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ul 22. 2024

더위 먹은 내비게이션과 액땜(2편 완)

                         

검사 예정시각 약 20분 전에 드디어 병원 정문을 들어섰다. 이 정도면 그저 선방으로 보아도 됐다. 그런데 그것이 또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자주 찾곤 하던 제1주차장은 지하 6층까지 빈 공간이 전혀 없이 꽉 들어찼다. 그래서 제2 주차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때였다. 나는 초음파실로부터 내 위치를 확인하는 연락을 받았다. 예정된 시각에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결국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얼마간 별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출발했음에도 예정시각보다 10여분 늦게 검사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김밥집에서 이곳 병원 정문을 통과하여 제2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까지 54킬로미터를 주파하는데 무려 2시간 16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주행경로를 뒤돌아보았다. 구월동 김밥집 => 남동 IC => 2경인 고속도로 => 제3 경인고속도로 => 수원 광명간 고속도로 => 강남순환고속도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엔 이리 고속도도가 많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려는듯했다. 초복인 오늘 이 내비게이션이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통행료는 평소 한 번 부담으로 끝난 것이란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려 3회에 걸쳐 총 4,300원이나 부담해야 했다. 병원행 편도코스 주행엔 너무나 많은 비용을 청구받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오늘 일어난 이 @맵이란 내비게이션 일탈의 진정한 원인에 관해 친구나 지인들에게 두루 물어보았다. 결국은 오늘도 나는 기계치인 동시에 고문관 진면목을 보여준 해프닝이었음이 드러났다.      


나보다 자동차 운행경력이 모자라거나 연평균 주행거리로 보아도 훨씬 적은 친구들도 이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금세 파악하여 내게 현장지도를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이래서 나는 아직도 길치에다 기계치인 고문관에서 이제껏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오늘 해프닝의 실체적 진실은 이러했다. @맵엔 출발지에서 목적지를 타이핑한 후 주행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창이 무려 8개가 버티고 있었다. @추천, 최소시간, 무료도로 우선, 최단거리, 고속도로 우선, 이륜차통행, 어린이 보호, UBER TAXIS 등이 화면 화단에 직사각형 박스 형태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종래 나는 첫 번째부터 5번째까지의 선택지가 장착되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미리 세팅된 ‘@맵추천’ 경로 옵션이 당연히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굳게 믿었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직업운전자가 아닌 다른 주위 친구나 지인들 모두는 이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세상엔 나만 전혀 모르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일이 여전히 제법 여러 곳에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맵 추천’ 경로가 ’ 고속도로 우선’ 경로 옵션으로 바뀌어 세팅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대로 운행하였으니 내비게이션을 나무랄 일은 전혀 없었다. @맵은 내 애마의 운전자가 자신에게 명령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죄밖에 다른 잘못은 전혀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초음파와 혈액 검사 결과 지난번과 변함이 없습니다. 암수치도 정상입니다.  1년 후에 다시 이곳에서 뵙겠습니다.”    

 

최근 메이저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나도 검사일정이 뒤로 미루어지는 등 적지 않은 애로를 겪어야 했다. 이에 환자의 병원 방문 횟수를 다소 줄여 부담을 덜어주려는 병원 측의 배려가 있었다. 오늘 치러진 2개의 전공필수과목에서 이른바 무혐의 처리란 반가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니 내비게이션 주행경로 선택 옵션조작의 오류로 야기된 해프닝 정도는 그저 가벼운 액땜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여기서 약 20여 년 전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내 애마에 별도로 장착한 내비게이션 기기의 도움으로 운행하던 시절이었다. 한가위를 맞아 귀성여행 중이었다. 경부고속고로로 진입했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라는 내비게이션의 분부를 그대로 받들던 기억이 새로웠다. 당시 그 원인의 실체적 규명은 아직도 미제로 남은 아쉬움이 있다.   

   

‘@맵 추천이 아닌 고속도로 우선옵션을 따른 결과 주행거리 단축이란 소기의 이득은 얻지 못한 반면 3회 통행료 합계 4,300원은 거리 대비 고비용 저효율의 프레임에 굳게 갇힌 결과가 되고 말았다.      


내가 직장에 재직 중 넘어야 했던 여러 번의 허들이 있었다. 희망퇴직의 시행이 바로 그것이었다. 회사 측이 이를 시행하는 명분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고비용 저효율의 개선의 기억이 되살아나 쓴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통행료 징구내역은 물왕 1,000, 남광명 1,300, 금천 1,900원이었던 반면 귀가 시엔 인천 720원 한 번으로 끝났다. 확연한 대비를 누구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맵추천경로로 안내를 시작합니다란 음성 안내 멘트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도 평소 대수롭지 않게 넘긴 대가를 치렀다. 병원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맵 추천 경로로 안내를 시작합니다.”라는 음성안내멘트가 그제야 똑똑히 내 귀에 들어왔다. 더위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내가 먹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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