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연 12%인데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는 동결이 유력해 보입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소 누구러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제 기준금리의 인상을 접고 인하시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몸을 담았던 금융기관은 대형 법인고객만을 따로 관리하고 개척하는 영업을 전담하는 법인영업본부라는 조직을 두고 있었다.부서장급 팀장 아래 2인 1조로 여러 개의 팀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도 3팀장인 오 부장은 단골거래처를 방문하여 상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최근 채권시장 동향과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관해 중앙은행의 결정 스텐스에 관한 전망을 진지하고 성의껏 설명을 마쳤다.
“팀장님, 지난 주말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라운딩 하셨어요?큰 아드님은 대학입시 준비 잘하고 있지요? 다음 주중 편한 시간에 점심식사를 한 번 모시고 싶습니다.시간 좀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팀장인 정 부장은 어쩐 일인지 말 그대로 경제 시장 동향 이런 부분에 관해선 단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을 소재로 부담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자리를 뜨기 직전이었다. 정 부장은 짐짓 망설이듯이 머쓱한 표정까지 지어가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팀장님, 이번 분기말까지 저희들 한 번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뵙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이제 그만...”
여기서 오 부장과 정 부장의 법인영업 스타일에선 확연한 차이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정한 법인 영업 고수가 과연 누구냐에 관해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었다. 상대 법인고객의 규모, 성격 자금운용책임자의 스타일에 따라 그 결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운용 기간의 장 단기 비중, 안정형 공격형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회사 법인본부의 거래처라면 최소한 일정규모 이상의 대형조직이고 그런 곳에선 경제 동향 시장 움직임 등에 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파트를 구비하고 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금운용책임자라면 자신의 회사 해당부서에서 생산되는 경제나 채권시장 동향 등에 관한 자료 내용은 이미 줄줄 꿰고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렇게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주제에 관해 법인영업팀장이 그에다 설명이나 전망을 보탠다는 것은 어쩌면 지루한 일이고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그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상대 팀장의 관심사, 가족 자녀 이야기 등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접근방식으로 보였다.
“어차피 3군데 엇비슷하게 나누어 주실 것이지만 자투리가 생기면 저희 쪽으로 챙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모점포에서 법인전담팀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지점 거래규모 1,2 위를 다투는 공공기관 조직이었다. 오늘은 해당 법인을 우리 지점 새로운 팀에게 인수인계받는 현장이었다. 우리 지점 법인영업팀장은 상대 법인 자금운용팀장에게 늘 자연스럽게 건네는 멘트를 우리에게 직접 시현해 보여주었다.
이 공공법인은 그 성격상 자금운용 큰 틀에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우리 지점 점포장이나 다른 책임자와 특별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더라도 타 경쟁사 대비 우리 쪽에 자금운용 규모를 파격적으로 늘려 운용할 수 없었다.
내 전임 법인영업팀장은 물론 팀원도 바야흐로 법인영업 고수 반열에 올랐음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