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한 번 제대로 키워본 적 없는데 내 몸속의 혹은 내 의지와 다르게 이렇게 빨리 커버리는 걸까?
자궁근종이 있다는 건 몇 년 전에 알았고 건강검진 할 때 한 번씩 추적관찰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 말 건강검진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초음파를 본 병원에서는 개복수술을 하자고 해서 다른 종합병원에서 다시 초음파를 했다. 그곳에서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말씀드렸더니 진료 당일 MRI를 찍었고 수술날짜는 2주 뒤로 정했다. 복강경으로 진행한다고 하셨다.
외래진료를 보러 오는 날에는 진료시작시간인 8시 30분이 오기도 전에 접수하고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게 당연한데 수술은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얼떨결에 하루 안에 병원 바닥에 그려진 파란 선, 노란 선, 빨간 선을 따라 피검사, 심전도, MRI를 모두 마쳤다.
막상 수술날짜를 잡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져서 수술이 마치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모른척하며 근교로 드라이브도 다녀오고 며칠을 재밌게 보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면 순조롭게 되는가 싶으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난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피검사 결과 간수치가 높아서 다음날 내과 진료를 보라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병원을 몇 번을 가는 건지 머리가 어지럽고 간신히 끌어올렸던 긍정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우울한 오후를 보내고 다음 날 동생과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오전 일찍 먼저 병원에 갔다.
(또) 다행히 간수치 두 종류가 모두 높았으면 걱정을 했겠지만, 하나만 높은 걸로 나왔고 수술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수술 전에 피검사 한 번 더 해보자고는 하셨지만 문제 될 것 같지 않다고도 하셨다.
올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속 기도만 몇 번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은 잘 다녀왔고 수술날짜는 속절없이 다가왔다.
2주가 흘러 수술 당일 아침 10시까지 도착하면 되었던 시간은 피검사 덕분에 30분 당겨져 9시 반까지 도착해서 내과에 얼굴도장 찍고 채혈을 했는데, 아무 이상 없었던 건지 (아무도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1시간 이상 소파에 앉아있다가 링거를 꽂으러 갔다.
주사 맞을 때 바늘을 못 쳐다보는 겁쟁이인데 항생제 주사 맞을 때 "으악" 한 번 하고, 3박 4일 동안 꽂아놓을 두꺼운 링거 주사 맞을 때 또 한 번 "으악" 하고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잔인한 주삿바늘이여.
수술 전 잠깐의 의사 선생님과 대면에서, 복강경 배꼽 구멍 하나로만 수술을 진행할 건데 안되면 구멍 하나 더, 안되면 하나 더, 안되면 개복 순으로 진행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던 터라 그냥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는 말만 속으로 되뇌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막상 수술침대에 누우니 무서워졌다.
건강검진에 받았던 두세 번의 수면내시경을 통해 마취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수술대 위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공장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시베리아 허허벌판에 나 혼자 남아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차가운 느낌이 강한 공간인 것 같다.
마취과 선생님의 "어지러우신가요?" 하는 말에 "아니요" "아.. 니.." 하고 나는 잠들었다.
날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회복실이다. "으...." 하는 신음이 절로 나오고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도 눈을 간신히 깜빡이면서 반대편 벽에 걸린 시계를 보려고 애썼다. 수술시간이 몇 시간이었는지 가늠해서 수술이 잘 된 건지 알아보려고 했다. 어른어른하는 시곗바늘은 오후 2시 반정도로 보였다. 그럼 수술은 2시간 정도였나? 그럼 나 잘 수술 잘 된 건가? 그런데 너무 아프다. 너무 아프고 발 시리고 그런 상태다.
움직이고 싶지만 아파서 움직여지지 않고 아프다는 신음만 나오는 상태다. 잠시 후 침대를 끌고 병실로 들어가고 제비가 말을 건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난 것 같았다. 개복도 안 했고, 구멍도 더 안 뚫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다니 개복수술을 했으면 까무러쳤을 것 같다.
제비는 자기 양말을 벗어서 나한테 신겨놓고 옆에서 괜찮은지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불속의 나는 소변줄을 꽂은 상태로 똑바로 누운 채 약 20시간을 보내게 된다.
병실은 4인실에 침대 세 개가 각 벽을 맞대고 있고 나머지 벽은 출입문, 가운데 끼어있는 침대는 환자가 없어서 3인 환자의 방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이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나는 꼬박 하룻밤을 움직이지 못한 채로 누워있어서 소리만 들을 수 있었는데 옆 침대 할머니(80대 중반)는 평소 건강한 편이셨는데 갑자기 넘어지셔서 고관절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들어오신 당일 응급으로 수술을 바로 받으셨는데 진통제가 잘 안 드는지 "아이고.." 곡소리를 계속하셨는데 재밌는 건 곡소리 중간중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또박또박 그 얘길 하시고 다시 "아이고"를 이어가시는 거였다. 아이고라는 단어가 진통제인 것 같았다. 중간중간 또박또박 일상얘기를 하시는 것도 너무 귀여우셨다. 밤새도록 그렇게 할머니의 작은 곡소리가 나는데 출입문 옆 아줌마(40대 후반)는 진짜 귀신소리 같은 어마어마하게 큰 코골이로 합창하셨다.
나는 평소 새우잠을 자는데 수술 후라 밤새도록 똑바로 누워있으려니 등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 같아 조금 돌아누워보려고 시도해 보는데 소변 줄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약간 돌아누웠는데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아 눈물을 흘리고 옆으로 눕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아이고와 천장이 무너질 것 같은 코골이 합창을 들으며 밤을 새웠다. 너무 힘들어서 까무룩 30분 정도 두세 번 잠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떠서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족쇄 같은 소변줄 덕분에 다시 포기하고 아픈 배를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잠깐 잠이 드는 것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은 흘러간다. 아침이 온다. 소변줄 빼는 시간만 기다렸는데, 소변줄 빼고 옷을 갈아입고 싶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오후에 오셨다. 어깨가 아프지 않냐고 하셨는데 정말이지 어깨를 누가 망치로 계속 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복강경 수술을 하면 그렇다고 한다. 어깨가 아픈 이유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정말 악몽 같은 하루가 지나고 나자 모션베드 덕분에 겨우 앉을 수 있게 되고, 죽을 반공기 정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복강경으로 아기 낳는 거 아니냐는 농담에 웃기를 시도하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미칠듯한 아픔에 겨우 "후 하 후 하"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수술 후 2-3일 정도는 농담 금지다.
또 다음 날엔 가까스로 혼자 앉을 수 있었고 잠깐 옆으로 누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배와 갈비뼈, 어깨는 아팠지만 이제 시체 같은 생활은 지난 것 같았다.
아이고와 드르렁 소리의 합창은 3박 4일 동안 쉬지 않고 계속 됐지만, 귀마개 덕분에 중간중간 항생제 넣는 시간 빼고는 2~3시간씩 끊어서 잘 잤고(이 정도면 숙면이다) 퇴원하는 날 아침엔 혼자서 옷 갈아입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물론 기침을 하거나 까무러치게 웃거나 하면 갈비뼈가 다 으스러지는 것 같았지만 집에 가서 3박 4일 만에 하는 샤워로 수술 후 악몽 같은 20시간과 코골이 등은 다 씻겨 내려갔다.
내 침대에서 깨끗하게 세탁한 잠옷을 입고 누우니 천국이다.
잠잘 때 빼고는 침실에 잘 들어가지 않는데 하루 종일 잠옷을 입고 침대에만 있으니 이것 또한 천국이다.
일주일 동안 지옥, 천국을 왕복해 보니 천국에서 다시는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는 건강이 제일인 걸 안다. 그리고 이 건강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도 안다.
회복 속도는 빨라서 2주가 지난 지금은 저녁에 러닝머신도 하고 음식은 최대한 건강하게 그리고 야식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집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는 작은 동산이 있다.
문득 밖을 보니 바닥에는 파릇파릇 잔디가 빼곡하게 자라있고, 동산 위 나무들에도 초록잎이 꽤 많이 올라왔다. 중간에 예쁜 매화나무도 한두 그루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어머" 감탄사를 내뱉는다. 내 몸속에 있는 혹을 떼어냈는데 2주 만에 이렇게 회복이 되는 내 몸도 신기하고 황량하게 나뭇가지만 가득하던 동산에 초록잎과 분홍잎으로 덮이는 봄이 오는 시간도 신기하다.
우리 집 앞동산도, 나도 더 반짝거리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