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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연주 Mar 15. 2022

관장형 헬스장의 루틴

관장형 헬스장 등록기 두 번째 이야기


필자는 소위 말하는 일반적인 헬스장 PT의 양상은 어떠한지 모른다. 헬린이의 ‘운동’ 얘기가 없는 헬스장 등록기이다.


이른 저녁, 관장님에게서 장문의 카톡과 무서운 근육 그림들이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피트니스 관장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오늘은 셋째 주일이라 휴관입니다. 오늘 아침식사는 시리얼 또는 바나나 1-2개, 계란 흰자 2-4개, 사과 1개 아메리카노 한잔. 점심은 닭가슴살 샐러드, 고구마 1-2, 우유 한잔 또는 일반식 백반, 저녁은 고구마 1-2개, 닭가슴살 1-2조각, 파프리카 한 개, 두유 한잔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운동은 팔 굽혀 펴기, 스쾃, 그런치, 레그레이즈 30개씩 3-5세트, 플랭크 운동을 60초씩 3-5세트를, 줄넘기를 500~1000개를 실시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파이팅입니다 ^ ^ “


오전 7시 40분, PT 받기 참 좋은 시간

   팬더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이전에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자기 관리의 끝판왕들만 한다는 오전 헬스장 PT가 가능해졌다.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이동해 업무를 시작하자면, “나 오늘 좀.. 멋진데…? “하면서 으쓱해진다.


    오전 7시 40분,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물 한 모금 빠르게 원샷하고 피티를 받으러 출동했다. 이곳 피트니스 센터는 근처 노인 보호구역이 지정된 장소인 만큼, 60대 이상의 열정적인 회원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시간에  피티라니.. 너무 무리했다라며 성큼성큼 페인트 칠이 벗겨진 아슬아슬한 계단을 올라간다.


   아침 일찍 마주하는 헬스장 광경을 보자니 졸음과 사투를 벌이다온 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진다. 이곳은 일출 시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신 어르신들께서 이미 운동 사이클을 한번 다 돌고, 여유롭게 수다를 떨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전 7시 40분은 이들에겐 한창인 시간일 때고, 오늘자 신문은 이미 다 훑어보시고 접어놓으신 지 오래다.


관장님과 함께하는 운동, 힘들지 않아요.


   우리 관장님의 PT는 팔 벌려 뛰기 20회부터 시작한다. 정성껏 짝! 짝! 박수소리를 내며 열심히 뛰고 나면, 이름 모를 기구로 안내해주시고, 한번 할 때마다 30번씩 반복한다. (6개월 정도 피티를 받았지만 나는 헬스장 운동 기구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변명을 하자면,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굳이 먼저 알려주시지는 않았다.

   특히, 상체운동을 할 때 관장님이 같이 기구를 잡고 도와주시는데, 어느 순간 내가 움직여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관장님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올 때쯤, 스무스하게 다른 운동 기구로 넘어가게 된다.


   “허이, 두이, 세이, 넷 다슷~ “깊은 단전에서부터 우러져나오는 단단한 울림을 듣고 있자니, 몇십 년간 얼마나 많은 숫자를 세셨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다. 중간에 전화가 오거나, 다른 회원님이 관장님을 찾아 잠시 피티 도중 다른 곳을 갔다 오시는 순간들이 있다.  자리를 비우시게 되면, 숫자를 혼자 세면서 운동을 이어나가는데 관장님은 한참 있다가 와도, “스물여섯, 스물일곱~~”하시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명확하게 숫자를 세면서 돌아오신다.


관장님의 루틴

   이 헬스장에는 소위 말해, “몸 좋은”사람은 없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울그락 불그락한 근육맨들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여기며, 생활 근육으로 다져진 사람들만이 진정한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할 뿐이다. 그중 가장 생활 근육으로 다져진 우리 관장님은 쇼맨십도 좋으시다.


   항상 운동 기구에 앉기 전, 앉을 의자를 향해 관장님은 두 손을 빠르게 감아 돌린 뒤, 오른손을 쭉 뻗어, 앉을 곳을 손으로 정확히 가리킨다. 매번 어떠한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지치지 않는 그의 매너 덕분에, 닳고 닳은 헤진 가죽 의자가 다소 꺼칠꺼칠하더라도, 기합을 넣고 앉을 수 있는 의자로 변모한다.


   PT는 관장님이 하고 싶을 때까지 보통 하시는데, 나의 얼굴색, 운동 속도를 지켜보시며 컨디션에 맞춰서 진행하신다. 딱히 규칙은 없다.

하지만 운동이 끝나고 나면, 항상 동일한 행동으로 운동 루틴이 마무리된다.


1. 두 주먹을 쥐고 짠 맞대며 끝낸다.

2. 그리고 관장님은 하늘을 향해 검지 손가락 쭉 피고 추파를 보낸다.



“관장님 그런데요..
허리가 아픈 거 같은데
뼈가 다친 것 아닐까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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