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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농업자 May 23. 2024

고마워요 양갱아저씨

어른이란 무엇인지 알려준 지리산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근래 들어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일이 많아 어디론가 길을 나설 때면 나의 동선을 늘 SNS로 공유했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주변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나의 피드로 화면이 채워지는 것에 싫증도 날 터인데,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해 주는 참 고마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중에 말로도, 글로도 표현 못할 고민이 있다. 문득 찾아들어온 아득한 고민에서 기인한 우울함이 폐부를 찔렀다.

 표현이 안되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나이가 차며 무던하게 어른의 반열에 올라서려나 싶었는데 몰아치자 쉴 틈 없이 울컥이는 감정들을 보니 한참 설익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지인들이 함께하는 단체카톡방에 한 친구가 자신이 찍은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사진과 함께 지리산 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곧장 등산화와 등산복, 그리고 집안 곳곳에 흩어져있는 먼지 낀 등산장비들을 죄다 모아 방바닥에 늘어뜨렸다. 


당장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었다.

 평소 운동이라곤 다가올 농부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 이제 막 시작한 '미라클모닝 후 아침조깅'이 전부였다. 지리산은 동네뒷산도 아니며, 평소 등산을 즐기는 사람도 맘먹고 도전해야 하는 산임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에 휩쓸려 맥을 추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났고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스카이다이빙이 그러했다(2022년 여름 충북 충주)


 이런 정신 나간 도전을 눈앞에 두고 약간의 이성이 돌아왔다. 도저히 내 체력으론 해가 떠있는 낮에 등반을 시작해선 정상에 오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법이 없자 잠시 잡았던 정신줄을 다시 내려놓은 채 나의 인생에 전례가 없던 새벽등반을 선택했다.



구절양장같은 지리산 가는 길이 기구한 내 인생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평일 새벽,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법한 깊은 산속에 뛰어들어 오로지 앞만 보고 오르다 보면 정상도 찍고 혹시 미천한 체력에 객기가 더해지면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엄청난 기대까지 배낭에 눌러 담았다.


지리산은 하절기인 4월~10월엔 오전 3시부터 입산이 가능했다. 객기 부릴 힘이 있으려면 최소한 잠은 자 둬야 할 것 같아 2시간 정도 선잠을 자고 자정을 알리는 알람소리에 전날 얼려두었던 물과 음료를 미처 여미지 못한 배낭에 구겨 넣었다.


중산리탐방지원센터 앞 지리산 등산 초입부


 등산로에 들어서자 일말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 암흑을 맞이했다. 잃어버린 정신을 다시 되찾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드렌턴을 켜면 비치는 지리산의 깊은 숲길은 인간 내면의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설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등산로 입구에서 망설이고 있던 중 잔뜩 긴장한 나를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반팔차림에 혈혈단신. 배낭도 없이 헤드렌턴 하나만 의지하며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연에게 지지 않기 위해 고슴도치마냥 잔뜩 날을 세워 올린 꼴이 누가 봐도 난도 높은 등산 한번 제대로 안 해 본 초보등산객일지 언데, 걱정이라도 조금 달래주고 가주면 안 되셨으려나..

쏜살같이 사라져 얼굴조차 제대로 아저씨가 지나간 길 위로 서운함을 쏟아냈다.

 허나,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너무나 까마득한 여정이기에 금방 그 다급한 발길을 이해했고 다행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도 한 발자국씩 어둠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바위와 나무뿌리를 겨우 구분해 가며 오로지 앞만 보고 발을 내딛기를 수차례, 그 사이 또 다른 등산객 분들이 나를 지나쳐가셨다. 암흑 한가운데서 만난 헤드렌턴 불빛을 알을 깨고 나와 어미오리를 처음 본 새끼오리마냥 악착같이 따라갔지만 결국 뒤처져 다시 어둠 속 혼자가 되어버렸다.



 청명하게 들리는 산새소리와 깊이를 모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뚫고 등산로 첫 갈림길에 들어섰다.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낯설고 두려워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갈림길 옆 기다란 평상에 앉았다. 한참 불빛을 비춰가며 배낭을 뒤적거리던 그때 한 중년의 아저씨가 나의 옆자리에 앉아 육중한 무게의 여장을 풀었다. 


 인사를 하시고 다른 분들과는 달리 잔뜩 움츠린 내게 이런저런 물음표를 건네셨다. 젊은이가 어쩌다 야심한 새벽에 산행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디서 왔는지, 산은 자주 타봤는지.. 나는 답변하다 결국 이번 산행이 감당하지 못할 객기로 시작했음을 실토했다. 


괜찮다면 저랑 같이 올라가실래요?

 아저씨는 선뜻 내게 동행을 제안했다. 어둠 속 혼자 청승을 떨어보겠다는 낭만은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내던지고 왔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중년의 아저씨와 함께 지리산 더 깊은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새소리, 물소리에 이어 사람의 목소리가 적막함을 몰아내주었다. 정신없이 앞서가는 아저씨의 속도를 따라가려는 중에도 사람의 육성이 고팠던 나는 연신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아저씨는 젊은이가 훌륭한 선택을 했다며 잘 될 거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여친'이 있냐는 젊은 나를 배려해 조심스레 던지신 질문에 아직 없다고 답변을 하니 그것 참 큰일이라며 소탈한 웃음을 보이셨다.

  '허허 짚신도 다 제 짝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이에 맞지 않는 자조 섞인 말로 응수했다.


 어느덧 중턱에 다달았을 무렵, 앞서가던 아저씨도 조금씩 힘이 붙이셨는지 나와의 물음표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끊어지고 나의 거세지는 숨소리가 이제 조금씩 걷혀가는 어둠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아저씨는 혹시라도 젊은 총각이 자신을 따라온다고 무리하는 건 아닌지 여러 번 뒤를 돌아보셨다.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얘기하라고, 같이 가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체력이 바닥을 찍어갈 때가 되자 아저씨는 계속 뒤에서 따라 올라오면 힘들 테니 한번 앞서 가보라고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 주겠다며 선두자리를 내어주셨다. 잠깐동안 힘차게 올라갔지만 이내 지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땀을 비 오듯 쏟아낸 행색을 보고 아저씨는 양갱을 꺼내 건네주셨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내 배낭 속엔 양갱보다 훨씬 맛있는 고열량 간식들이 꺼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꺼낼 힘이 없었다. 숨쉬기도 벅찬 그때 냉큼 입 속에 집어넣은 아저씨의 양갱은 가수 비비가 왜 그토록 양갱에 달디달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입 속에 단 것이 들어가고 이제 렌턴 없이도 산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아왔다. 1차 목적지인 장터목대피소가 있는 능선도 이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금 채비를 하고 산행을 이어갔다. 하지만 얼마못가 양갱 은혜를 준 양갱아저씨를 따라가기엔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장터목인데 먼저 올라가 있을게, 본인 페이스 유지하면서 천천히 올라와요"


 양갱아저씨를 보내고 혼자가 되었지만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풍광들은 청량했고 상쾌했다. 


 혼자 다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생각했다. 어른이란 무엇인지.

 오랜 시간 청소년활동을 하고, 청소년과 함께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선배가 되어오는 과정 속에서 어떤 일에도 묵묵히 후배들의 뒤를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언이랍시고 이런저런 궤변을 후배들에게 늘어놓는 이들을 혐오했고, 앞서가면 저렇게 된다며 나의 아집을 견고하게 다졌다. 


 허나 이번 지리산 등반에서 어둠을 뚫고 앞서가던 이가 없었다면, 앞서가다가도 가빠지는 나의 숨소리에 배낭을 내려놓으며 때론 앞서가던 자리를 양보하는 이가 없었다면, 힘들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자신이 먹던 양갱을 선뜻 나눠주던 양갱아저씨의 온정이 없었다면 정상에 올라서겠단 용기는 절대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나이만큼이나 비대해진 몸을 과감히 어둠 속에 내던질 용기를 나약하게 미뤄왔던 것이다.  

 아무리 나라는 사람이 뒤에 있다한들 칠흑의 어둠을 뚫고 한 발자국을 내디뎌야 하는 건 오로지 후배들의 몫이었고, 그 한 걸음의 무게는 어둠의 심도만큼이나 무거웠으리라. 


 반성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계속했다. 어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양갱아저씨께 무엇이든 보답을 하고 싶어 시큰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쉼 없이 올라갔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양갱아저씨를 찾아다녔지만 아저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정상으로 가셨을 텐데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고 따라갈 체력은 더더욱 안 됐다.


생애 첫 지리산 정상 등반 

 그렇게 생애 첫 지리산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하산하는 길에서는 마주치는 분들마다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며 인사를 나눠주시는 따뜻한 온정들을 걸음걸음 느끼며 무사히 아스팔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장장 9시간의 산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지리산에서 얻은 강렬한 교훈을 쉬이 잊을 수가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 낳은 교훈 덕에 막연하기만 했던 이 시대 어른이란 존재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혜안이 생겼다. 


산을 내려와 이어지는 행보들이 이제는 마냥 어리지만은 않을 것 같다.





추신: 경남 남해에 거주하신다는 선생님, 경황이 없어 존함조차 여쭙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산행하는 사람으로서 그리 대단한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었겠지만 제겐 많은 울림이 되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삶의 교훈을 전해주신 선생님. 다음에 만나 뵙게 된다면 꼭 은혜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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