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다시 쓰는 이유

by 효정

예전 잠깐 무역회사에서 일할 때, 선임도 없고 회사지침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해야 할 업무도 없던 그 시간을 채워준 것은 이효리의 SNS였다.


그때 이효리는 이상순과 결혼을 해 모든 화려한 서울의 생활과 연예인의 후광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내려가 그야말로 제주살이를 하며 인생 2막을 아름답게 보내는 중이었다.


이효리라는 인물은 알면 알수록 궁금하고 매력적인 인물인 데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그러니까 자연이나 요가 또 음악과 동물 같은 것을 비슷한 온도로 아끼는 중이었어서, 그녀를 탐미하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이효리가 커다란 개 한 마리와 함께 뒷산 겨울 숲 속길을 걷는 사진인데, 그 사진에서 느껴지는 고요와 평안함이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해 보였다. 그때부터 내게 이효리는 그런 기운을 가진 인물이 되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엄마집에 갔다.


연말이라는 핑계, 아빠가 고기를 사준다는 더더욱 좋은 핑계를 구실 삼아 이주 연속 엄마아빠에게 삐댄 채 지낸 것이다. 이 주 연속, 그것도 꽃도 없고 나무도 없고 사과 소일거리도 없는 이 겨울, 마을과도 떨어진 그 외딴 시골집에 있다 보니, 티브이도 휴대폰도 책도 모두 시시한 시간이 왔다. 오죽하면 5살 된 딸이 사랑의 하츄핑을 그만 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엄마가 산에를 가자고 한다. 산이라는 것은 늘 듣기도 좋고 보기도 좋고 모든 것이 좋으나 내가 오르기엔 너무나 힘든 존재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나를 산에 끌고 가려했던 엄마의 노력이 모두 무산되고 난 결국 산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다 여기고 있었는데, 다시 그 산이 내게로 온 것이다.


이보다 더 심심할 순 없던 차였으니, 그래 새해고 또 산을 다녀오면 아빠가 사주는 소고기가 더 맛있을 거라는 생각에 5살 딸과 100킬로 거구의 신랑도 끌고 다닐만한 괴력의 강아지(겨우 2살이다) 하루와, 이제 막 엄마집에 새로 입양되어 온 흰둥이 솔이와 함께 산으로 출발했다.


얼마 전 발도 다쳤고 낙엽에 미끄러워 겨우 엄마 꽁무니만 보고 따라가다가 하루가 푸다닥 공을 주우러 가는 찰나에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 내가 그렇게 선망하던 장면이 내 앞에 있었다.

이런 공기의 온도였겠구나, 발 밑의 낙엽과 흙은 이런 냄 새였겠구나, 함께 걷는 이들의 목소리와 속도는 이정도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며, 내가 가장 사랑하던 그 순간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울컥 감동을 했다. 이건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코를 훌쩍이며 핸드폰을 꺼내는데 극 T로 추정되는 딸이 "그러니까 추울 땐 마스크를 껴야지."라며 내 콧물을 나무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가다가 다시 한번 마주한 장면은 다시 한번도 감동이었는데 , 아마 한동안 내 핸드폰의 배경화면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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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집 뒷길을 따라 겨우 20분 오르고 마주한 곳이니 가성비가 매우 훌륭한 등산이고 게다가 광경도 뛰어나다. 나는 신이 나서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자고 하는데, 다들 내가 너무 오버스럽다고 했다.


여기 사과꽃이 피면 너무 이쁘겠다, 엄마 다음엔 부추 찌짐 구워서 막걸리 들고 오자, 내일은 아빠도 같이 와서 다 같이 가족사진 찍자고 난리법석인 딸이 이미 버거운 엄마와 진짜 산은 언제 가냐고 말하는 딸 사이에서도 나는 그냥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오래오래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만 마음속으로 꿈꾸는 장면. 그냥 생각만 해도 슬며시 기분이 좋아지고 내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장면. 가만 보면 그런 장면들은 그다지 요란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것 같다. 가만히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불쑥하고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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