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같은 사람

처음 쓰는 러브레터

by 효정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먼지'라는 노래를 들었다.


그대의 마음에

나를 들여놓을 틈이 있다면

그 작은 틈에 들어갈 수 있는

먼지라도 될 텐데


멜로망스라는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의 가수가 부른 것인데 먼지가 이리 감성 돋는 단어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의 먼지가 생각났다.




모든 커플에게 그러하겠지만, 우리도 결혼을 결정하고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러 다닐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이 사람이 왜 좋아요?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장점을 어필할 기회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내 결혼생활에 미세하게나마 스스로 확신을 더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 먼지 같아서요


내 대답에 으잉? 하는 표정반, 아~ 또 장난! 하는 표정반으로 날 쳐다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사실 '오~ 나 또 웃겼나?' 하는 생각에 잠시 우쭐하기도 했었다. (어느 자리에서나 양껏 웃기지 못하면 집에 와서 잠이 잘 안 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덕에 대학 때 술을 그렇게 먹고, 매일같이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 있으면서도 그렇다 할 연애를 잘 못했으니... 그건 그때 내 개그욕심 때문이었다고.. 믿고싶(?)다.)


있는 줄 몰랐지만 알고 보면 어디에든 있었던 사람. 그게 바로 현 신랑 택군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먼지의 실용성이나 중요도에 초점을 맞춰서 말한 게 아니라 그 존재감에 방점을 가지고 한 말이니 택군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면..


나는 천성이 재미있는 것을 놓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워하고, 아침과 저녁의 온도가 20도씩 차이나는 사람이다. 빠르게 포기하고 또 시작도 주저 없어서 뭐든 벌려 놓는 걸 좋아한다. 매일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지나가는 차의 운전자도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한다.


하지만 택군은 평생의 온도가 지중해 온화한 기후에 맞춰져 있는 사람이다. 화를 내는 것도 본 적 없기로 니와 그렇다고 그렇게 박장대소하며 웃는 걸 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친구라 부를 인간관계는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으로 접힐 만큼 좁디좁고, 회식을 제외한 개인적 약속은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친구를 만나는 것이 다다.


그런 택군은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큰 창 앞 책상에 사락 앉아 있은 먼지 같은 느낌이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쬐면 비로소 보이는 사람. 내가 온갖 것을 떠들어도 그냥 그렇게 있는 사람. 그러다 내가 털썩 책상에 엎드리면 사폴 내 위로 떠오르는 사람.


난 그런 것들을 애정한다. 나와 아주 대척점에 있는 조용하고 사 부작 한 것들. 어쩌면 동경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




어느 날인가 집으로 와 후다닥 저녁약속을 위해 준비하고 나서려던 찰나, 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택군을 봤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좋아하는 것들을 주저 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지금 저 소파에 있는 조용한 지지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내가 글을 다시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