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거제
12월 3일
겨울바람이 아직 잠에서 깨기도 전, 나는 다시 거제로 향했다.
방어를 만나기 위한 여정. 익숙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바다로의 부름이었다.
펜션에 일찍 도착해 몸을 눕혔지만, 내일의 파도와 손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 6시.
출조 시간이 되자 차가운 바람이 서슴없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겨울은 늘 직설적이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그 찬 기운은, 오늘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바다를 예고하는 듯했다.
나는 전날 꽂아두었던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데도 조사님들은 이미 배 위에서 메탈 지그를 손질하고 있었다.
긴장한 마음, 설레는 기대, 엔진의 진동… 모든 것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오늘도 만선호였다.
선장님의 목소리는 바다 바람을 가르는 도끼처럼 힘이 있었다.
“자, 다들 오셨죠?”
명부 확인이 끝나자, 배는 통통통, 낮은 북소리처럼 바다 위로 뛰기 시작했다.
물살을 가르는 흰 포말이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고, 우리는 파도와 함께 점점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갔다.
갈매기들은 동이 트기 전의 한기를 뚫고 날아올라 우리의 뒤를 따랐다.
멀리서 새벽빛이 은은하게 수평선을 적시고 있었다.
안경섬에 도착했다.
“내리세요!”
여덟 명의 조사들이 거의 동시에 메탈 지그를 날렸다.
차가운 바다 위로 은빛 쇳덩이가 쏟아지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수온 차가 큰 탓인지 입질은 없었고, 만조라 더더욱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선장님은 포인트를 옮기고 또 옮겼지만, 고기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째 이어지는 이동.
고요한 절망감 속에서 엔진 소리만 바다 위를 긁었다.
11시, 썰물이 시작되자 남편이 먼저 삼치를 올렸다.
요즘 방어보다 삼치와 부시리가 먼저 얼굴을 내민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방어 기근’에 허덕이는 몸이었다.
그러던 중—
초릿대 끝이 깊게, 묵직하게 휘었다.
전기가 도는 듯한 힘이 손목부터 어깨까지 전해졌다.
“부시리다!”
선장님의 외침은 확신에 가득 찬 낚시꾼의 직감이었다.
부시리는 시작부터 싸움이 다르다.
전동릴이 버거울 정도로, 물속에서 녀석은 나와 줄다리기를 했다.
낚싯대는 활처럼 휘고, 물속에서 은빛 몸이 뒤틀리는 기세가 전해졌다.
마침내 녀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첫 수확이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며, 몸속 깊은 곳에서 환희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질 않았다.
또다시 삼치들이 배 둘레를 맴돌며 물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히트!”가 외쳐지면, 곧이어 미끄러지는 은빛 삼치가 배 위로 올랐다.
“삼치 싫어, 싫어!”
선장님은 투덜거렸지만, 그 목소리에는 묘한 웃음도 섞여 있었다.
이번에는 남편과 내 낚싯대가 동시에 휘었다.
줄들이 엉켜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내 삼치는 빵이 크고 거의 미터급이었다.
그런데 선장님이 급히 줄을 잡아당긴 탓인지, 녀석이 눈앞에서 떨어져 나갔다.
물속으로 사라지는 은빛 꼬리를 바라보며 숨이 턱 막혔다.
아깝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선장님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가라앉은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저킹을 시작했다.
팔이 욱신거리고 어깨가 뻣뻣해져도 멈출 수 없었다.
바다 위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은 언제나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또 한 번 낚싯대가 반달처럼 휘었다.
힘의 결이 달랐다.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방어다! 이건 방어야!”
선장님 목소리가 확신으로 쩌렁거렸다.
나는 온 힘을 짜내 물속의 거대한 그림자를 끌어올렸다.
수면을 가르며 올라온 방어의 빛깔은 살아 있는 파도의 결 같았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과 마주한 것이다.
방어를 배 위로 옮기자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풀렸다.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배고픔도 한꺼번에 몰려왔다.
점심 도시락을 조사님들과 둘러앉아 먹었다.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추운 바람 속에서 허기를 달래는 데는 그만이었다.
오후의 바다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햇살이 차가웠던 몸을 데우고, 조사님들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선장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며 배를 돌렸다.
오늘 주어종은 방어였지만, 삼치와 부시리가 더 많이 얼굴을 내민 하루.
바다는 늘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오게 만든다.
육지로 돌아가는 길.
배의 통통 울림이 유난히 편안하게 들렸다.
펜션에 도착해 따뜻한 방에 들어서자, 하루 동안 얼어 있던 몸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바다는 오늘도 많은 걸 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그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