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천
2025년 12월 19일 날씨 맑다.
새벽 다섯 시,
대구 낚시를 위해 강릉 사천항에 닿았다.
출조는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이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항구에서 바다는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잔잔한 물결처럼 이어진다. 잠은 거의 자지 못했지만, 피로는 바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오늘 함께할 배는 만복호.
여름날, 이 배를 타고 대구를 쿨러 가득 채웠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여운이 아직 몸 어딘가에 남아 있어, 다시 만복호를 찾았다. 기억은 늘 사람을 같은 자리로 데려온다.
일곱 시 삼십 분.
배는 항구를 떠나며 천천히 물길을 연다. 엔진 소리만이 고요를 건드릴뿐, 바다는 숨을 죽인 듯 잔잔하다. 만복호는 물 비늘을 일으키며 잠든 바다의 등을 살며시 두드린다. 저 멀리 하늘이 붉어지고, 동이 트는 빛이 수평선을 물들인다.
“포인트 멀지 않습니다. 준비하세요.”
선장님의 목소리가 새벽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슬로 지그 메탈을 달고, 전동릴을 세팅한 뒤, 채비를 수심 사십 미터 아래로 내려보낸다.
오늘의 바다는 유난히 조용하다. 파도의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아, 봄날의 엄마 품처럼 따뜻하다. 바다 위에는 통발들이 줄지어 떠 있다. 흰 부표들은 마치 물 위에 놓인 배구공처럼, 지나가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린다.
전동릴 초릿대가 미세하게 떨린다.
드디어, 바다가 신호를 보낸다.
입큰대구다.
입을 벌린 모습이 과장처럼 커서, 그 안으로 세상이 다 들어갈 것만 같다. 무심코 손을 뻗어 입속으로 넣는 순간,
짧은 비명.
날카로운 이빨에 놀라 손을 재빨리 빼낸다. 불과 몇 초 사이의 일이다. 대구를 순한 고기로 오해한 대가였다.
일행 중 한 분은 대구 낚시가 처음이다.
“고패질을 부지런히 하셔야 해요.”
한 마리를 끌어올리더니 웃으며 말한다.
“생각보다 스릴은 없네요.”
방어처럼 밀고 당기는 손맛과는 다른 세계다.
물살은 완전히 장판이다.
이런 날엔 마음도 고요해진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멀리 대관령 풍력발전소가 보인다. 눈이 내렸는지, 산 위에는 희미한 흰빛이 남아 있고, 하늘에는 눈꽃송이 같은 구름이 흩어져 있다.
아름답다.
바다는 늘 말없이 많은 것을 건네준다.
그때 남편의 목소리가 바다 위를 가른다.
“큰 거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구가 아니라 문어다. 족히 삼 킬로는 되어 보인다. 모두의 시선이 그 문어를 따라 움직인다. 대구를 만나러 왔다가 뜻밖의 생명을 마주한 순간이다.
다시 포인트를 옮긴다.
“삑— 내리세요.”
선장님은 말한다.
“여기 이백이십구 마리 어군 보입니다.”
처음엔 진짜인 줄 알았다. 포인트를 옮길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 작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거짓말이 싫지 않았다. 조사들의 마음에 힘을 얹어주기 위한, 바다식 농담이었으니까. 누군가 웃으며 말한다.
“거짓말도 이제 그만하시죠.”
선장님은 웃으며 답한다.
“내가 그 말 믿을 줄 알고요.”
하지만 대구는 쉽사리 얼굴을 내주지 않는다. 물이 정조라 입질이 없다. 이 넓은 바다의 고기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배 위에는 여조사님 세 분도 함께였다.
나는 쉬지 않고 낚싯대를 움직인다.
누군가 말한다.
“체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열두 해 동안 바다와 이어온 인연. 그 시간 속에서 바다는 나를 여러 번 품어주었고, 여러 번 놓아주었다. 바다는 나에게 인생 공부였고, 하나의 철학이었다. 고기는 주는 만큼 잡힌다. 욕심을 낸다고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후 두 시,
대구 낚시는 끝이 났다.
강릉 사천항의 바다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마음속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지금부터가,
인생 낚시의 다음 장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