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낚시

거제

by 정인동화작가 시인

부시리 (110cm) 2025,11,19, 맑음



거제 구조라항에 도착하니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짧은 여행이지만 2박 3일 동안 펜션에 머물며 마음껏 쉬고, 기다려온 낚시도 해보리라 계획했던 길이다. 짐을 풀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오늘의 첫 일정, 방어 낚시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새벽 5시 30분 출조.
아직 동도 트지 않은 부두엔 파도 소리만 넘실거렸다. 우리는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만선호를 찾아 걸었다. 지인 한 분이 합류해 총 여덟 명. 낯선 조사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선장님은 명부를 작성하며 출조 준비를 서둘렀다. 긴장과 기대가 묵직하게 공기 속에 스며 있었다.
오늘의 대물은 과연 누구에게 갈까.

나는 은빛 메탈지그를 선택했다. 전동릴을 연결하고 채비를 차근차근 살폈다. 파핑은 오늘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뒤, 만선호는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켜라, 내가 간다’ 하는 듯, 배는 어둠 속에서 힘차게 달렸다.

안경섬 근처에 다다르자 하늘은 옅은 푸름을 띠며 서서히 밝아졌다. 갈매기들이 가장 먼저 아침을 알렸다. 멀리 떠 있는 배들은 물결 위에서 춤을 추듯 출렁였고, 그 사이 파도가 높게 들면 감추어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내리세요!”
선장님의 외침과 동시에 낚싯대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모두들 말없이 저킹을 반복했다. 마치 누가 상금을 주는 대회에라도 나와 있는 듯한 집중력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이 찰 정도로 저킹을 해도 방어는 기척이 없었다. 대신 지인이 먼저 삼치 한 마리를 끌어올렸고, 나도 곧이어 묵직한 삼치를 한 마리 올렸다.

바다는 늘 그렇다. 우리가 기대한 답을 주지 않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포인트를 옮긴 뒤에도 바다는 잠잠했다.
조사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메탈을 던졌다. 말없이 서로의 집중만 확인할 수 있는 시간. 바다 위의 침묵은 길고, 어느 때보다 묵직했다.

세 번째 포인트에 닿았을 때였다.
바닥층에 지그가 닿자마자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본능이 속삭였다.
‘있다.’

저킹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동작

그 순간,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지며 팔 전체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왔다. 진짜가 왔다.

주변 소리들은 모두 멀어졌다.
오로지 손끝과 팔, 그리고 바다 아래 그 한 점만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크다! 버텨요! 그대로 유지!”
뒤에서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이미 내 안의 모든 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놈은 깊은 쪽으로, 또 옆으로, 다시 아래로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릴이 역회전하며 손바닥이 뜨겁게 데었고, 팔은 떨렸지만 놓칠 수 없었다. 아니, 놓쳐서는 안 됐다.

시간은 정확히 얼마나 흘렀을까.
분이 아니라 ‘한 동작, 또 한 동작’으로만 흐르는 시간이었다.

결정적 순간은 파도가 크게 한 번 들고 지나간 그때였다.
놈의 힘이 아주 조금 풀렸고, 방향을 틀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면 위로 은빛 덩어리가 떠올랐다.

“부시리다! 백 열은 넘겠다!”
선장님이 뜰채를 들며 외쳤다.

놈이 배 위로 들려 오르는 순간,
나는 숨을 몰아쉬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진짜였다.
대물.
이 배의 주인공, 오늘의 주인.

손은 떨렸고, 온몸은 불이 나는 듯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바다와 정면으로 겨룬 뒤에만 오는 그 고요함.


줄자는 꼬리를 지나 머리까지 닿았고, 선장님이 결과를 읽었다.

“백…십. (110cm)
오늘 장원입니다!”

작은 환호가 배 위에서 터졌다.
지인은 내 어깨를 세게 두드렸고, 몇몇 조사님이 웃으며 박수를 건넸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실감은 더디게 찾아왔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안경섬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녀석의 몸을 쓸어보았다.
축축하고 따뜻한 생명의 무게.
그 속에 오늘의 파도, 기다림, 긴장, 그리고 나 자신이 모두 들어 있었다.

선장님이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이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이건 운도, 경험도, 힘도 다 있어야 나오는 놈이에요.”

항으로 돌아오는 길, 해는 구름 사이에서 금빛을 쏟아냈다.
아침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얼굴.
빛을 머금고 흔들리는 물결을 보며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펜션에 돌아와 씻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피로는 있었지만 기분은 이상하리만큼 후련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낚시는 결국,
‘바다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순간’
그것을 얻기 위한 긴 여정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대물을 잡았다.
그리고 바다는 오래 기억될 하루를 내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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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