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어느덧 친구는 대기업 이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한동안은 심심한지 “뭐 하냐?”며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얼굴이나 보자 해도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슬쩍 빠져나왔다.
동창회에서 만나면 반갑고,
돌아서면 괜스레 그리워지는 친구였다.
한 이 년쯤은 놀다시피 하더니
어느 날 시험을 본다고 했다.
어디, 어느 도로공사란다.
발표 날을 기다리더니 됐다고 했다.
출근을 시작했다는 말이 짧고 담담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어느 날은 산에 올라 벌목을 한다고 했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한 동창,
학창 시절엔 반장이던 녀석이다.
“아니, 네가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해?”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닥치면 하지.”
이 년을 놀았어도
그래도 일하는 게 좋은가 보다.
엊그제는 모처럼 눈이 많이 왔다.
친구가 있는 그곳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했다.
전화 통화 중에 물었다.
“이번엔 무슨 일 하고 있어?”
소금을 실어 나르고 있단다.
힘들지 않으냐고 하니, 할 만하다고 했다.
그래, 맞다.
놀면 뭐 하나.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다.
“정인아.”
그는 늘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눈이 쌓인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고
소금 가마니가 산처럼 쌓인 사진도 함께 보냈다.
그래, 넌 참 소금 같은 친구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없으면 가장 먼저 티가 나는 존재.
말없이 위로해 주고
조용히 이야기를 받아주는 친구.
언제나 앞장서서 친구들 사이에 서 있던
멋진 상남자이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의 그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더 힘차게 들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나이라는 이유로 발목이 잡혀
일하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
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친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또 다른 인연을 만들며
자신의 다음 삶을 일궈 나가고 있다.
나 역시 등단 이후
문학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
열심히 살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즐거움이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붓을 들고
캘리그래피 속으로 들어간다.
글과 그림으로
나의 다음 꿈을 향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