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청소,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순간

by 민s Brunch

집을 정리하다가 문득, 나는 물건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해서 샀던 물건들은 어느새 필요 이상이 되어 있었고, '언젠가 쓸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버리지 못한 것들이 집의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이건 세일하니까.’ ‘2개 묶음이니까.’ ‘다이소에서 플렉스!’를 외치며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을 쓸어 담던 내 모습들. 그 물건들에는 구매했던 순간의 감정들이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듯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감성적 소비. 아, 그래서 마케팅이라는 학문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소비에 있어서 결코 합리적인 주체가 아니기에, 그 비합리성의 틈을 정교하게 겨냥하는 학문. 마케팅은 우리의 불안과 기대를 자극하고,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사면서 감정을 산다. 그리고 때로는 그 감정을 버리지 못해 물건도 버리지 못한다.


결국 하나의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는 과정 전체가 다 ‘나’의 이야기다. 구매한 이유,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에 버리는 결심까지도. 집에 남은 물건들은 고스란히 내 판단의 흔적들인 셈이다.


나는 어쩌면 그 순간의 선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서, 그 실패를 끌어안고 살아온 건 아닐까.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라는 말은, 사실 ‘그때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 아니었을까.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내 과거의 오판이고, 그 오판을 끌어안는 것은 현재의 나를 과거에 정체시키는 일이다.


그렇다면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된다. 그것은 구매했을 당시의 감정과 이제는 작별하겠다는 선언이며, 과거의 오판을 인정하고 현재를 살아갈 빈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물건을 살 때 조금 더 신중하고, 버릴 때 좀 더 용기를 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물건을 버리는 일은 나를 얽맨 과거로부터 나를 가볍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가벼움 속에서, 나는 비로소 다시 나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뒤로 하고 마주하는 현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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