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개수는 줄이고, 밀도는 올리고.

by 띠또

1. 비움의 여정

엉겁결에 3개월 꽉 채운 비움의 시간을 보냈다. 시작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회사를 쉬는 남편과 백화점에 갔다가 필요 없는 아주 크고 화려한 쉐도우 팔레트를 산 것이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 화장을 잘하지 않는데 미국 언니 스타일의 형형색색의 쉐도우를 대체 왜 샀을까 싶다. 꽉 찬 화장대 서랍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새로 산 팔레트를 처분할 수는 없어서 더 이상 쓰지 않지만 비싸게 사서 미련이 남았던 화장품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집안 전체를 돌아봤다.


이사를 하면서 짐들을 한번 걸러냈지만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이 곳곳에 많았다. 중고거래도 여러 번 하고 몇 번이나 분리배출을 하면서 나의 소비 습관을 처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언젠가 쓸 것 같아서 미리 사두고 (안 쓰는) 것들

- 몇 개는 있어야 구색이 맞으니까 필요한 수량보다 더 사서 잉여자원으로 남아있는 것들

- 무턱대고 사서 어딘가 부족하거나 불편한 물건들

- 사보고 만족도가 높아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몇 개씩 더 산 수집품

- 생활 장소와 패턴이 바뀌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


이 물건들을 사기 위해 들인 돈, 시간이 아까워 속이 쓰렸지만 어찌 저찌 정리를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물건을 들이는 것에 많은 생각을 했고 무의식적으로 사대던 습관이 저절로 고쳐졌다.

갖고 싶은 것에 대한 물욕은 처음에는 조절하기 어려웠지만 미래에 그것을 비워낼 나를 생각하니 저절로 사라졌다. 세일에 혹한 노란 무쇠 냄비를 결제하고 취소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유혹을 참아내고 ETF를 샀다.

경제관념 없이, 그런 관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살던 나였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 같다는 직감도 함께.


2. 가치 있는 소비?

그렇게 좋아하던 옷을 많이 처분하고 -그 와중에 당근에서 나의 옷을 되팔이 하는 사람까지 경험하고 나니 물건 자체에 정이 떨어졌다- 미래에 버려질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남을" 소비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금값이 많이 오르기도 해서 귀금속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어떤 것을 살까 또 소비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미 있는데 '금을 사니까 남는 거야' 라며 굳이 또 소비를 하려고 했다. 이 시기에 시계를 선물 받았는데 방금 산 따끈따끈한 물건을 두고 다음에 살 것을 고르느라 정신없는 나를 발견하고 현타가 세게 왔다.

"물건"을 소비하는 것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선물을 주는 입장에서는 받은 사람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소비의 가치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물욕을 위한 소비에 관한 대답은 아니오 이다.


생활에 사용하는 필수품은 꼭 필요하니 신중하게 질 좋은 것으로 하나만 장만할 것이다. 잉여&사치품의 영역에 속하는 것에는 아주 냉정해질 것이다. 그 경계를 잘 설정해야 할 것인데, 옷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면 내가 일상에서 자주 입는 옷은 일상품, 어쩌다가 생길 행사를 위한 일회성 (대부분 비싼) 옷은 사치품이다. 혹시나, 언젠가 하는 마음을 완전히 비워버리기. 공간에 맞추어 물건의 규모를 생각하니 수납함들을 다 정리할 수 있고 팬트리까지 싹 비워서 마음까지 개운하다. 다 떨어지면 그때 나가서 사 오면 된다. 굳이 공간을 차지하고 정리에 신경 쓰며 살 필요가 없다. 얼마나 후련한지.


3.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물건과 함께 눈먼 물욕을 비워내니 나의 시간과 에너지의 목적을 생각하게 되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는 나에게 보상하기 위해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찾아보고 고민하며 시간을 쓰고, 찰나의 기쁨 후에 그 물건을 고이 모셔두다가 결국에 정리하고 후회하는 일은 더 이상 그만할 것이다. 이제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 맹목적이고 과대한 욕망에서 허우적거리기 싫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남들과의 비교, 초라함도 우월감도 나를 힘들게 한다. 평온한 마음으로 아무런 번뇌 없이 살고 싶다.

정신을 집중할 곳이 없으면 소비로 푸는 것 같다.

물건에서 벗어나서 무형의 가치로 인생을 채우는 시간을 좀 가져야지.

- 일 자체에서 오는 몰입감, 책임감, 성취감, 보람감에 집중하기

- 생활을 부지런하게 꾸리기 : 정돈, 건강한 식사

- 가족과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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