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파에르 보들레르, 민음사
프랑스 현대 시의 아버지 보를레르가 쓴 유니크한 산문시집이다.
시라고 읽기에는 장황하게 산문처럼 쓰였고, 어떤 시는 우화와도 같다.
형식이 독창적이지만, 내용은 더 기발하고 몽상적이면서 창의적이다.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차원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어쩌면 그렇게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잘 표현했을까.
이 시가 나온 게 19세기 중반경이라고 한다면
잠시 그 시대상으로 갔을 때 얼마나 파격적이었을까.
지금 읽어도 경계를 넘나드는 도발에 세차게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대부분 시들이 주석을 읽지 않고는 난해하여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한 시에 대한 최초의 영감은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유명한
"밤의 가스파르"를 끈질기게 정독한 데 있었다고 한다.
이 시들은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낸 보들레르의 삶과도 많이 관련이 되어있다.
보를레르는 여성 혐오, 대중 혐오로 유명하고, 33번째 시 '취해라'에서 노래하듯
시간에 노예가 되지 말고 무엇이든 취하라고 했는데, 예로 술, 시, 도덕을
지적하고 있다.
시인의 사조나 철학으로 보면 댄디즘에 해당된다.
댄디즘은 프랑스나 영국의 상류증에서 일어났는데, 무게, 깊이를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멋, 치장을 주로 고려함으로써 일반 계층의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태도를 말하며, 그 당시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댄디즘을 잘 표현하는 문장으로 "무심한 듯한 우아함"이 잘 어울린다.
파리의 화려함보다는 민낯을 솔직하게 들어냄음로써
대도시가 주는 황량함과 우울을 한층 승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맹목적 찬양과 추종보다, 솔직한 비꼼과 토로가
더 사람들이 가슴속에 진솔하게 다가올 수 있다.
억지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용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우월감에서
오는 자존심이 시인의 삶을 지탱하지 않았나 싶다.
시를 읽으며 내 안에 감춰진 위장을 잠시 걷어내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듬는 시간이 되었다.
황량한 도시적 삶에 나를 들이밀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시인의 삶과 산문시가 작은 지표가 될 것임을 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