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질풍노도의 시간을 앞서나간 사람

by 프리맨

괴테는 그의 나의 불과 25세 때인 1774년에 이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14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괴테가 법학 공부를 마치고 1772년 봄 베슬러라는 도시의 고등법원에서 법무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곳의 법관 부프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 집 딸 샤로테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는 나이 16세에 이미 외교관 케스트너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괴테는 그녀를 비상한 애정으로 대하였으나, 그녀는 괴테를 타이르고 자기로부터 우정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괴테는 상심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반년 후 역시 베슬러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있던 예루살렘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정을 품고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괴테 자신의 사랑과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의 스토리도 위에 기술한 실제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간단하게 소설 속 '나(베르테르)'라는 인물은 화가로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로테의 약혼자가 빌려준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로테에 대한 절절하고 애끓는 사랑의 마음은 시처럼 작품 내내 흘러넘친다. 카인의 저주처럼 선택받지 못한 나는 결국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강한 사랑의 마음을 불사르고 있다. 자살한 총을 로테가 손수 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격한다.


"로테! 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치는 행복을 누려봤으면 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을 다시 찾게 해 드릴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기꺼이 용감하게 죽으려고 했습니다."(210p)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선택에 대해 보통 사람은 감히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반면 위로가 되는 걸까.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안타깝고 쓰라린 것일까. 쉽게 가질 수 있다면 그만큼 가치도 떨어지고 애절함도 덜 할 거다. 매달리는 나에게 로테는 냉정하게 말한다.


"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선생님에게 그런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더욱 두려워지는 거예요."(176p)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나는 로테의 말을 듣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포기하고 다른 삶을 살든가 아니면 자진하는 것이다. 나는 자진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다. 전부였던 로테를 곁에 두고 무관심하게 살아간다는 건 나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않는다.


이 책이 출판되자 독일 젊은이들은 광적으로 좋아했다. 질풍노도의 인생기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자살로 끝나는 러브스토리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선택하거나, 그가 입은 노란 조끼를 따라 입었다. 이 작품이 나올 때 18세기 후반 시대 배경을 보면 개인의 자유로운 사랑과 연애라는 것이 너무도 생소할 때 아닌가. 괴테는 시대를 앞서서 젊은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랑의 감정은 무죄이고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괴테는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괴테는 실제 이런 일을 경험하였지만, 83세까지 장수하며 여러 여인과 만나고 헤어졌다. 괴테의 인생을 보면 철저히 다른 사람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가운데 관계들 들여다보았다. 타자를 조정하거나 관여하기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기 때문에 오래 살고 다양하게 인생을 즐겼던 것 같다. 시대를 앞선 괴테의 위대한 작품은 실제 그의 인생관과 맞물려 오래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