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음식
냉장고 한구석에 박혀있는 묵가루가 눈에 띄었다.
레시피를 찾아보고 난생처음 묵 쑤기에 도전하였다.
소싯적에 나는 시골에 살아, 엄마는 가을이면 나를 데리고 도토리를 털러 갔다.
나는 그것도 가기 싫어 뺀질거리면, 엄마는 이리저리 달래서 함께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일손에 도움이 되어서라기보다
귀여운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데리고 다니고 싶어서가 아닐까.
아니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험한 산에서 말동무가 되고 의지가 되었을까.
지천한 도토리는 금방 자루에 한가득 모을 수 있었다.
나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엄마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시간을 끌다가 내 말을 들어주었다.
막상 도토리묵을 쒀보니 레시피가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다.
물과 가루를 6:1로 혼합하여 중간불에 끓이다가
기포가 올라오면 소금을 넣어 간을 하고
마무리로 참기를 넣어 빛깔을 빛나게 하면 된다.
그렇지만 계속 한 방향으로 저어주어야 눌어붙지 않고 묵이 형성된다.
한 방향으로 저어주는 이유는 엉키지 않고 묵의 모양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에 연한 갈색이 점점 짙은 커피와 같은 갈색으로 변해간다.
동심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원을 보니
그때 엄마가 묵을 쑤며 아마 내 얼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지금 저으며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고 있다.
처음 만든 묵이니 먼저 엄마에게 주고 싶으나, 너무 멀리 산다.
지금도 엄마는 가끔 가을이면 직접 도토리를 구해 묵을 쑤고
나를 기다린다.
음식 배우기를 잘했다.
음식을 만들고 나눠먹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거리를 보니 자꾸 센티해진다.
그만 센티해져도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