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안나와요

덥다 더워

by 해피엔딩

한껏 우쭐함에 들떠 있는 경민.
이제 나도 2주택자, 부동산 투자자라는 마음에,
더운 날씨도 잊은 채 런닝머신 위에서 야구를 보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세입자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세입자가 웬일이지?’
뭔가 불길한 기분.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드르르륵— 진동이 멈추고,
잠시 뒤 도착한 문자.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지난주부터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안 나와서요.
수리기사님이 다녀가셨는데, 에어컨 문제가 아니라
배관 문제일 수 있다고 하셔서…
집주인과 얘기해보라네요. 전화가 안 돼 문자 남깁니다.


경민은 런닝머신 위에서 넘어질 뻔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겨우 중심을 잡고, 다시 문자를 확인했다.
잘 되던 에어컨이, 왜 갑자기 안 된다는 거지?

그 에어컨은,
전 집주인이 두고 간 물건이었다.

경민도 신혼 초 전셋집에 들어갔을 때,
집주인이 쓰던 에어컨을 그대로 받은 적이 있었다.
디자인은 올드했지만,
“찬바람만 나오면 됐지.”
시원하게 몇 해를 잘 버텼다.

그런데…
경민이 전셋집을 나올 즈음,
그 에어컨은 찬바람을 멈췄다.

하지만 곧 이사 나갈 예정이었고,
“뭐, 내년 여름 되면 고치겠지.”
가볍게 넘겼다.
집주인에게 따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날씨 더운데 고생하셨겠어요.
제가 알아보고 곧 연락드릴게요.


일단 문자엔 그렇게 답했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는 막막했다.

무인으로 공회전하는 런닝머신이
딱 지금 경민의 머릿속 같았다.

‘…아, 부동산에 연락해보자.’

갑자기 웬 부동산인가 싶지만,
경민이 계약했던 곳은 좀 달랐다.
단순한 중개가 아니라,
집 관리까지 꼼꼼히 챙겨주던 곳.


소장님, 오랜만이에요.
지난번 전세계약했던 세입자 집인데요,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다고 해서요.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장님은 에어컨 수리업체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이제 다 해결되겠지.’
경민은 안심하며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 세입자 집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안 나온다는데요,
한 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기사님은 세입자와 직접 일정 조율 후
경민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다.

경민은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불안한 기색은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며칠 뒤, 수리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시죠?
이건 에어컨 배관 문제입니다.
배관이 벽 사이에 들어가 있는데, 노후로 인해 교체가 필요해요.
보통 아파트가 10년 넘으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일단 바깥 배관만 교체해보고,
안 되면 안쪽까지 손봐야 해요.


경민은 침착한 척하며 물었다.


견적은… 어느 정도 나올까요?



음… 9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 보셔야 해요.


쾅.

경민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머리카락은 쭈뼛쭈뼛,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100만 원? 아니 150이라고?! 미쳤나…’

하지만 수리를 미룰 수는 없었다.
경민은 겨우 입을 열었다.


최대한 잘 부탁드립니다…


그날 밤,
경민은 믿지도 않던 신에게 처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수리비 적게 나오게 해주세요…”


며칠 후, 다시 울린 전화벨.


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바깥 배관만 교체해도 잘 작동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견적은 130만 원 나왔습니다.


경민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견적서와 계좌번호를 문자로 부탁하며 전화를 끊었다.

130만 원.
13만 원도 아니고, 130만 원.


돈을 벌어다 줘야 할 것이
내 피 같은 돈을 빼앗아 간다.


경민의 속이,
텁텁하게 막혀왔다.

“10년 넘은 아파트는
에어컨, 보일러 교체 여부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
블로그에서 봤던 그 문장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신님…
수업료로 130만 원이면 충분히 냈다고 생각해요.
제발… 이제 복 좀 주세요…


그런데,
에어컨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경민의 ‘연락’은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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