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에 물지도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가 계속 흘러나왔다.
경민은 고민 끝에 테이프를 거실 통창에 X자로 붙일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테이프를 붙이면 파손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고,
“도움 안 된다, 괜히 유리에 테이프 자국만 남는다”는 말도 있어
그저 인터넷 댓글들만 뱅글뱅글 돌며 경민의 결정만 흐렸다.
결국 ‘붙이자’고 마음먹고는 공구함을 뒤적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테이프는 보이지 않았다.
‘아휴, 쓰고 나면 좀 제자리에 좀 둬라니까…’
이내 그 짜증은 곧장 아내 탓으로 돌려졌다.
바로 그때였다.
“띠리링—”
익숙한 진동음과 함께 화면에 떴던 이름.
‘세입자.’
경민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아씨… 또 뭔데…’
짜증이 치밀었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고, 기계처럼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한참을 울리던 벨소리가 멈추고, 이내 도착한 문자 한 통.
경민은 애써 모른 척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그 문자에 점령당했다.
시간은 고작 5분이 지났을 뿐인데, 경민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
결국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사장님, 벽에서 물이 새요. 벽지가 다 젖고 축축해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벽에서 물이 샌다고? 무슨 호러영화야?'
갑자기 벽지가 들뜬 모습, 곰팡이가 피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 이거 진짜 누수면 수백 들 수도 있는데…’
경민은 최대한 평온한 어투로 세입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불편하셨겠어요. 상황 알아보고 바로 조치 취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늘 SOS를 보내는 구세주, 부동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잘 지내시죠? 늘 죄송합니다, 일 생길 때만 연락드려서요.
다름 아니라, 세입자분이 벽에서 물이 샌다고 하셔서요.”
소장님은 의외로 침착한 말투였다.
“요즘 장마라 비가 많잖아요. 그런 경우 흔해요.
외벽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다가, 날씨 개면 다시 말라요.
누수인지 아닌지 지켜보시고, 계속 반복되면 윗집일 수도 있어요.”
경민은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파트 외벽이면 관리소에서 처리하고, 윗집 문제면 거기서 비용 내겠지.
설마 이번에도 내 돈 쓰진 않겠지.’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경민은 세입자에게도 조심스럽게 안내 문자를 보냈다.
“아마 장마철이라 벽을 타고 물이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금 지켜보시고, 또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말씀 주세요.”
며칠 뒤, 태풍이 지나가고 장마도 끝났다.
다행히 세입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오진 않았다.
벽 물샘 사건은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
경민은 그날 밤, 간만에 마음 편히 드라마를 보며 맥주 한 캔을 땄다.
얼핏 남은 물자국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별일 아니었지 뭐. 다 지나갔다, 다행이야.”
그러나,
습기 찬 벽지 뒤에서
곰팡이가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있다는 걸,
경민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