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하나 고쳤을 뿐인데...
“사장님, 세입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이사 가게 됐어요. 다음 달까지는 집 비워드릴게요.”
경민은 그 문자를 읽고,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뭐? 2년도 안 채우고 나간다고?’
전세계약이 2년이니까, 2년은 채우고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불과 1년 몇 개월.
세입자는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경민은 새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하필 지금, 전셋값 떨어졌는데…’
몇 달 전부터 블로그며 뉴스며 “역전세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던 차였다.
설마 했던 일이, 진짜 내 일로 찾아온 거다.
며칠 뒤, 또다시 걸려온 세입자의 전화.
이번엔 보일러 문제였다.
“보일러가 이상한 소리를 내요.
웅— 하다가 꺼졌다가, 또 웅— 하고… 무서워요.”
경민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에어컨 다음은 보일러냐…’
결국, 보일러 기사님을 불렀다.
노후 점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보일러 교체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경민은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싶었다.
‘설마, 또 수리비? 이번엔 얼마야…’
90만 원.
이제 90만 원쯤이야 놀랍지도 않다.
한숨이 깊어질 뿐이다.
경민은 결국 믿을 곳을 찾았다.
부동산 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보일러도 교체하래요.
도대체 이 집 왜 이래요. 집 산 지 1년도 안 됐는데… 자꾸 문제만 터지네요.”
소장님의 대답은 담담했다.
“아파트가 10년이 넘으면 그래요.
에어컨, 보일러, 배관, 화장실… 슬슬 손 볼 때죠.”
“그래도 이건 뽑기가 너무 잘못된 거 아니에요?
보일러에 에어컨에… 도대체 뭐 하나 멀쩡한 게 없네요.”
경민은 괜히 짜증을 냈고, 소장님은 그냥 웃었다.
그 웃음에 경민은 더 허탈했다.
‘웃으시네… 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보일러 교체는 결국 진행됐다.
90만 원은 경민의 통장에서 조용히 빠져나갔다.
경민은 계산서를 들여다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제발, 다음 세입자라도 빨리 구해지게 해주세요…’
그 기도가 닿았는지, 한 중개문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전세가는 예전 같지 않았다.
“전세가가 좀 떨어졌어요.
이번에 계약하려면, 보증금이 2천만 원 정도 줄어들 것 같아요.”
결국 경민이 2천만 원을 보태야 새 계약이 가능해졌다.
“…….”
경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90만 원에 2천만 원이면… 하, 이 집에만 지금 얼마가 들어가는 거야.’
그날 밤, 경민은 어두운 방에서 홀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앞으로의 이자, 남은 대출, 새로 메워야 할 공백.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마음을 스쳤다.
‘처음엔 돈 벌자고 시작했던 건데…
지금은 왜 이렇게 자꾸 돈이 빠져나가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은 없었다.
결국은 이렇게 또, 배워가는 거겠지.
돈이 아니라, 책임을.
집주인이 된다는 것의 무게를.
경민은 조용히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쯤이면… 수업료 충분히 낸 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