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공간에서 배우는 감정의 분
버리려던 교과서를 쓰레기통에 넣어두었다.
잠시 후, 그것이 다시 교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가 말없이 꺼낸 것이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했다.
“왜 내 허락 없이?” “내가 버리려던 건데?”
그 생각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문제는 교과서 한 권이 아니었다.
‘나의 선택이 존중받지 못한 감정’이었다.
만약 이렇게 물었다면 어땠을까?
“혹시 이거 선생님께서 버리신 건가요? 실례지만, 재활용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그 한마디가 있었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존중의 언어다.
그 말 속에는 ‘당신의 선택을 인정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학교는 매일같이 수많은 선택이 오가는 공간이다.
그만큼,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말 한마디가 교무실의 공기를 바꾼다.
나는 한동안 ‘그 선생님이 나를 무시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분의 의도는 달랐을 것이다.
“쓸 수 있는 걸 왜 버려?”
그 단순한 아까움이었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영향이라는 것을.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게 감정의 출발점이다.
의도를 단정하지 않고, 영향을 바라볼 수 있다면
관계는 훨씬 덜 상처받는다.
우리가 쉽게 놓치는 건, 감정의 분리다.
‘나를 무시했다’는 해석은
사실 ‘내가 존중받고 싶었다’는 욕구의 다른 표현이다.
상대의 행동을 그대로 두고,
그에 대한 내 감정만 따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감정의 분리다.
학교라는 공간은 감정이 오가는 곳이다.
아이들과, 학부모와, 동료 교사와,
끊임없이 말과 표정이 교차한다.
그 속에서 감정을 분리하지 못하면
우린 쉽게 상처받고, 또 쉽게 상처를 준다.
존중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기술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이,
상대의 세계 안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그 질문을 마음속에 한 번 던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오해는 사라진다.
그날의 작은 불편함은 나를 가르쳤다.
존중은 배려보다 먼저 오고,
멈춤은 사과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학교는 아이들만 배우는 곳이 아니다.
교사인 나 역시, 매일 배우고 있다.
배움의 이름은 ‘감정의 분리’이고,
과목명은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다.
교과서 한 권에서 시작된 일은
결국 인간 관계의 교과서를 다시 펼치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의 물건을, 누군가의 생각을
내 마음대로 꺼내 들지 않겠다고.
그리고 무언가를 꺼낼 땐,
꼭 이렇게 물어보자고.
“이거, 버리신 건가요?”
그 짧은 문장은 존중의 문법이고,
학교 공동체를 단단히 잇는 말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