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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했다는 감정에 대하여

분리되지 못한 나, 그리고 성

by 해피엔딩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오해를 겪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무심한 행동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건드릴 때, 우리는 종종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의 태도, 동료 직원의 재활용 책 처리 방식, 분주한 행사 현장에서 느껴지는 나의 자리는, 순간순간 내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정말 '상대가 나를 무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내 감정과 생각, 그리고 존재를 분리해내지 못했기 때문일까?


최근 아내와 나눈 깊은 대화를 통해, 나는 '분리'라는 개념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감정과 존재를 동일시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작은 행동도 '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과 존재를 분리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상처는 조금은 덜 날카로워진다.


예를 들어, 내가 학교 행사에서 소외감을 느낀 날. 동료는 아무 말 없이 내가 맡고 있던 자리를 채워버렸다. 아무 말이 없었기에, 나는 밀려났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며 "내가 여기 있는 게 방해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자리를 떴다. 그 감정은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와의 대화 끝에 나는 그것이 곧 '무시'의 의도가 아니라 '분리되지 못한 감정'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박재희 원장님은 말했다. 누구든 자기 일이 되면 분리가 어렵다고. 전문가조차도 자기 문제에 있어서는 감정을 분리해내지 못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제3자의 시선, 스승의 조언, 혹은 타인의 말을 통해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겪는 감정들을 조금 더 객관화하고, 그 감정들이 나라는 존재를 전부 규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무례함, 혹은 무심함이 곧 나의 존재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순간적인 방식일 뿐이며,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때로는 정말 무례한 행동도 있다. 예컨대 명백한 차단이나 공격적 언행처럼. 그럴 땐 감정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적 상처는, 분리를 연습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오늘 아침, 나는 과학 교과서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에 넣어놨는데, 그것을 다시 꺼내 놓은 동료의 행동을 보며 '간섭'이라는 감정을 느꼈지만, 곧 그것이 그분의 가치관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재활용이 중요하다는 그의 믿음, 그리고 자원 순환이 중요하다는 나의 믿음이 부딪혔을 뿐, 악의는 없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그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우리는 분리되지 못한 감정 때문에 종종 상처받는다. 그러나 분리는 도피가 아니라 성찰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일. 그게 어쩌면 철학이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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