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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도망갔다 올게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을까?

by 이지연



“주방 한 모퉁이 구적자리‘가 한때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마음 편한 장소였던 적이 있다. “


그곳은 나의 눈물 자국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 모서리 작은 비밀의 장소에서 나는 신께 울부짖기도 하고 , 때론 한숨짓기도 하였다.

유일하게 평온히 기댈 수 있는 장소,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잠시나마 세상과 거리를 두고 내가 선택한 막다른 곳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도망갈 곳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안정이 된 이후,

나는 주방 한 모퉁이가 아닌 제주의 한 구석 시골마을로 도망쳤다.


단 며칠일지라도 허락된 나만의 시간.

감격스럽고 , 황송스러우며, 미안함과, 그리움이 뒤엉켜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묘한 기분이다.


혼자 가는 여행은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과는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캐리어에 잔뜩 아이가 먹을 경장 영양제와 약, 의료용품, 그리고 아이의 옷가지들을 채우고 나면, 내 짐 넣을 자리가 없어 캐리어 모퉁이에 충격방지용 삼아 끼워넣곤했다.


짐을 이고 지고, 십 킬로가 넘는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공항 활주로는 마치 극기훈련을 생각나게 한다.

여행, 힐링과 같은 단어는 새카맣게 까먹게 된다. 아마도 체력을 기르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두 팔 엔 이두박근이 생기며, 나와 전우는 서로 자신의 팔뚝이 더 굻지 않냐며 자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를 챙겨야 할 것도 휠체어가 들어가는지 안 들어 가는지 체크할 일도 없었다.

달랑 봇짐하나 챙겨 홀가분하게 떠나는 발걸음이 바람처럼 가볍다.



“꼭 다시 돌아와야 해 “라는 남편의 말을 뒤로한 채,

오로지 내 위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6년 동안 지도에 별표만 쳐놓고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다녔다.

독립서점 가기, 소품샵에서 귀여운 물건 보며

내적 소리 지르기,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마음껏 책 읽기 , 지도에도 없는 해변에서 스노클링 하기.

1일 1 수국보기,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어 입장이 어려웠던 제주의 숲길만 골라 다니기 등 ,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깨면서 문자 그대로 ‘꿀맛 같은’ 하루들을 보냈다.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원래 나를 잊고 지낸 몇 년.

내 이름 세 글자만 남았을 뿐 , 진정한 나는 녹아 없어져버렸었다.

하지만 혼자 도망치듯 떠난 여행은 진정 나 다운 삶이 뭐일까, 내가 원했던 삶이 어땠는지 떠올려 주었다.

잠시 내가 아픈 아이 엄마란 걸 잊고, 나만을 위한 이기적이지만 이로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해”.

어쩌면 뻔한 이 말이 나에겐 맞지 않는 말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아인, 얼굴 표정도 없고 , 말도 못 하는 아이라 행복한지 어쩐지 속마음을 도통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느낄 것이다. 엄마가 지치고 무기력해 세수도 못한 채 마치 죽어있는 사람 같을 때와 , 엄마가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아이를 대할 때 느끼끼는 것이 분명 다르다는 것을.


나에겐 있어선 “엄마가 행복해야 적어도 아이를 단지 의무감이 아닌 사랑의 힘으로 정성 들여 돌볼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아이의 휠체어를 밀수 있고 조금이라도 아이를 안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눈 맞춰 줄 수 있다.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나도 뼈절히 느끼는 것은 엄마가 지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잘 돌보며, 아이를 보살필수 있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나에게 있어선, 엄마로서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과 아이를 지키는 일이 되었다.


잠깐 책임과 의무에서 멀어져 숨을 고르고,

마음을 정비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있는 도망’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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